성주간 월요일

2016. 3. 20. 오후 11:3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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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간 월요일. 이사야 42,1-7; 요한 12,1-11

  별로 만나고 싶지 않는 면 중에 하나가, 사람들의 약한 모습을 볼 때입니다.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자신만의 약점을 어떻게 보십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로마의 압제 하에 있었기에 힘 있는 구세주가 와서 자신들을 구원해 줄 꺼라 믿었지만, 정작 왔다고 하는 그 분은 그저 연약한 아기였습니다. 게다가 십자가에 처형당했다고 하고요. 그래서 이스라엘인들은 예수님은 그저 지나간 한 명의 예언자쯤으로 치부합니다. 그런데 우린 이 분을 구세주로 믿는다고 말하면서 여기 앉아있지요.

  솔직히 불편합니다.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는 껄끄러움이 내 안에 있습니다. 구세주라는 분이 허약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당신은 왜 그 방법을 택하셨을까요? 오늘 독서 말씀에도 나옵니다.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 않으리라.” 요즘 공천 준비하는 국회의원처럼, 보통 같으면 나 여기 있다~’ 고 소리치고, 홍보하고, 드러내고, 안 받아주면 모든 방법을 강구하여 어떻게든 기어이 자신을 드러내는 데 반해, 오히려 당신은 숨어드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가셨다는 십자가의 길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정말 그 방법 밖에 없었을까?’ 부터 시작하여 별별 생각이 들지요. 물론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봉헌 속에서 모두를 구하셨다 는 답을 낼 수도 있겠지만, 신앙은 모범답안을 외우는 수준에서 그쳐서는 안 되지요. 내가 고백한 답이 아니니까요. 교우들의 신앙이 약한 이유도 그렇습니다. 본인이 직접 느낀 맛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우린 그 약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예수님 오른편에 매달린 우도(右道)는 주님과 같이 매달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느꼈습니다. 잘은 몰라도, 이 분은 내가 저지른 범죄와는 다른 종류의 사람이다.’ 라는 것을 그 짧은 시간에 직감적으로 파악합니다. 사실 우리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당신의 약함은 우리의 약함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우린 한계를 느끼며 힘들어하지만, 당신은 한계를 받아들이며 다른 이들의 고통을 껴안는 약함이다.’ 십자가의 길을 가면서도 여인들을 위로하는 장면이 그것이지요. 그러기에 우리와는 상당히 다른 약함의 차원입니다. 복음에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시간의 주인공은 우리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살아있는 이 시간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 귀중한 시간에 당신의 구원계획을 헤아릴 수만 있다면, 이 사순절에 그것만큼 복된 시간은 없겠지요. 내가 가진 약함이라는 보잘 것 없는 향유를 가지고 주님께 무엇인가를 드리고 바치는 자세일 때 당신은 답을 주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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