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3주간 목요일. 호세 14,2-10; 마르 12,28-34
누군가 무언가를 잘못했을 때, 그를 깨우쳐준다고, 혼내고, 타이르고 충고하는데 익숙하지 않으셨습니까? 잘못된 점은 고쳐줘야 한다고 그동안 우리가 배웠으니까요. 하지만 말해준다고 한들, 금방 그 말을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1독서처럼 “그러나 그들은 순종하지도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제 멋대로 사악한 마음을 따라 고집스럽게 걸었다.” 고 나옵니다. 여기서 우린 왜 이런 지를 봐야 합니다. 그 마음 안에는 ‘내가 나를 제일 잘 알기에 나를 조절할 수 있는 것은 나다.’ 라고 믿기 때문 아닐까요? 마치 어린 아이가 떼를 쓰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여기서 이런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서기 300년경부터 사막에서 고행하고 기도하던 사막의 교부들중에 스케티스 사막의 교부인 ‘압바 푀멘’ 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죄를 짓고도 ‘나는 죄 짓지 않았다.’ 하고 부인하더라도 그를 질책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그의 용기를 꺾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에게 이렇게 말하십시오. ‘용기를 잃지 마시오, 형제여! 그러나 앞으로는 당신 자신을 잘 돌보시오.’ 그러면 그대는 그의 영혼이 회개하도록 일깨워 준 것입니다.” 라고요. 매일 고해성사를 주다보니 저도 이와 비슷한 것을 봅니다. 고해하러 오는 분들 스스로가, 자신의 잘못을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스스로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문턱에서 걸려 넘어집니다. 아마 본인들도 굉장히 답답할 것입니다. 매번 같은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니까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제 우린 이런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나는 나 자신을 제일 잘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어릴 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듯이 나는 일관성 없고, 때에 따라 달랐음을 인정한다’ 라는 자세가 될 때 여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항상 참 선택을 하신 주님의 자세가 떠올려집니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버리는 자다.” 라는 말씀처럼 주님이 선택한 기준을 따라갈 때 나를 잡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남의 강요보다는, 나 스스로 현실을 인정하는 자세일 때, 여기서부터 해결책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 마음의 귀가 열려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