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4주간 수요일. 이사 49,8-15.요한 5,17-30
가끔 교우분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싶다. 따라야 한다’ 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사실 그 안에는 불편한 진실도 섞여있습니다. ‘내가 자연스럽게 알고 말한 것이 아니라 남에게 그렇게 듣고 배웠기 때문’ 이기에 현실로 이어지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실제 내 마음상태는 준비도 안되었고, 그것이 불편하긴 하지만 그렇게 들어 배웠기에 해야 할 것 같은 하느님의 뜻’ 이라는 것인데요. 그럼, 이제부터 우리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들여다 보겠습니다.
우선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 말씀에 숨겨져 있는 패턴을 보겠습니다. 시간상 두 개만 보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아버지께서 당신 안에 생명을 가지고 계신 것처럼 아들도 그 안에 생명을 가지게 해주셨기 때문이다.” 보이십니까? 하느님과 예수님 자신을 동일화 시키고 있습니다. 사실 그게 유다인들을 열받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잘 보시면 이런 것을 발견합니다. ‘나의 뜻 = 하느님의 뜻’ 이라는 사실입니다. 보통 우린 하느님의 뜻만을 좇아야 한다고 들었습니다만, 당신은 ‘나의 뜻이 곧 하느님의 뜻과 같다’ 임을 말씀하십니다. 이게 가능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계속 좇지 않아도 되고, 내 뜻이 곧 하느님의 뜻이 되니까요. 이게 가능할 수 있는 이유는 인간 예수님의 상태가 무아(無我), 곧 자기 생각, 아집에 사로잡히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자기 고집, 자기 선호도가 없으니 하늘의 뜻과 일치됩니다. 이제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한 몇 가지 조건을 말씀드립니다.
가장 초보적 단계는 ‘양심성찰’ 입니다. 자기를 바라보면서 자기가 현재 어떤 사람인 지 알 때, 기분이 안 좋을 수 있어도, 이를 받아들이면서 거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하느님의 의도와 사랑의 방향을 아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답니다. 예를 들자면 오늘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부모가 아이를 버리고 학대하는 세상이라지만, 주님은 보통 엄마들이 잊거나 자기 맘대로 키우려는 그 아이마저 다 챙기는 사랑이랍니다. 생모가 하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말씀하십니다. 잊지 않고, 버리지 않는 사랑입니다. 당신의 그 의도를 알면, 세 번째로 그동안 배운 사랑을 토대로 나를 통해 그 사랑이 현실에서 어떻게 뽑아져 나오는 지를 확인 가능하게 됩니다. 즉 나의 뜻과 하느님의 뜻이 일치되는 지를 보게 됩니다. 마치 산삼을 캘 때, 뿌리에 붙은 흙을 살살 잘 털어내듯 나를 잘 살펴보는 연습을 해 나가신다면, 내 뜻이 곧 하느님의 뜻이라는 말이 무슨 말씀인지 알아가실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