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2주 목요일.예레 17,5-10; 루카 16,19-31
많은 분들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라고 묻는다면 ‘행복하게 잘 사는 것’ 이라고 쉽게 답하십니다. 하지만 ‘정작 행복한 삶이 되려면 어떤 과정을 겪어야 하는 지 아십니까?’ 라는 물음에는 잘 대답들을 못하시던데요. 어쩌면 오늘 복음에 나온 부자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부자는 날마다 좋은 옷을 입고,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고 나옵니다. 어디에도 남에게 해를 입혔다거나, 라자로를 괴롭혔다거나 등의 내용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주님의 품에 안기지 못합니다. 과연 무엇이 잘못되었을까요? 여기서 우린 평소에 어디에 관심을 기울이며 살았는 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옛 말에 ‘꽃은 화려하지만 뿌리는 검소하다’ 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꽃 없는 뿌리는 있지만 실상 뿌리없는 꽃은 없다’ 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많은 이들이 화려하고, 보기 좋고, 있어 보이는 삶을 원하지만 실상 그런 삶이 되려면 나의 바탕이 잘 갖춰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복음에 나온 부자도 그랬습니다. 화려하고 남에게 주목받는 남들이 살고 싶어하는 삶을 삽니다. 하지만 그 부자는 거기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즉 부유함을 누리긴 하였지만 그 부(富)가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고,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여 남을 도와야 할 지도 몰랐기에 그저 누리기에만 바빴습니다. 자기가 실상 돌봐야 할 근원인 뿌리가 어떤 지는 모르면서 그저 꽃피우기에만 신경 썼습니다. 하지만 그런 꽃피움은 1독서에 나온,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 힘인양 여기는 자” 들이었습니다. 사람은 상황이 달라지면 내 곁에 있던 사람도 떠나기 마련이고 기력도 떨어지면 우린 거동조차 하지 못합니다. 실상 돌봐야 할 것은 나 자신이었습니다. 사실 주위에는 우리 자신을 돌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들이 있어왔습니다. 마치 복음에 나온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는 말씀처럼 분명 우리를 살려주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관심은 그것과는 거리가 있었고, 살려줌의 의미조차 잘 헤아리지 못했던 적도 많았습니다.
누구도 후회하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사람이 주위에 많습니다.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는 말씀처럼 크게 재미없어 보이고, 별 티가 나지 않는 삶의 뿌리를 돌볼 때 그것이 힘이 되어 우리가 버텨나가게 해주는 힘이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