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간 화요일. 이사 49,1-6; 요한 13,21-38
우리가 이름을 들어 잘 아는, 다산 정약용은 긴 시간의 유배기간 동안 그냥 놀지 않고 500여권의 책을 남깁니다. 그것도 다양한 종류의 책을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불행한 삶이었지만 오히려 후대에게는 큰 보화를 남겨준 셈인데요. 그가 남긴 글 중에서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배우는 사람의 마음가짐에는 이런 것이 있어야 한다. 지혜, 부지런함, 고요한 침묵. 지혜롭지 않으면 굳센 것을 뚫지 못한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힘을 쌓을 수 없다. 고요하지 않으면 정밀하게 하지 못한다.’ 하지만 현실은 이런 모양입니다. 예전 동네 책방에 갔습니다. 엄청난 양의 문제집을 학부모가 가져와 내다 팔고 또 사고 있었습니다. 그 광경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 아이들이 똑똑한 아이가 되길 바라는 것일텐데.. 하지만 그러다 헛똑똑이가 되면 어떻하지?’ 저 모습은 아이를 문제 풀이 기계로 전락시키는 행위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그런 헛똑똑이 하나가 나옵니다. 주님을 배반한 유다입니다.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라는 말씀에 “빵을 받고 바로 밖으로 나갑니다.” 그가 제자단 속의 총무 역할을 하니, 다른 제자들은 필요한 것을 사거나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러 가나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역사적인 일을 저지르러 가지요.
그는 주님에게서 무언가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 방식대로 돌아가지 않자, 배반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후회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끝내 생을 마감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모든 것을 홀로 다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보통 사람들은 계획을 잘 세웁니다. ‘평일미사를 잘 나오겠다. 기도를 잘 하겠다. 부모님을 잘 봉양하겠다. 술을 끊겠다..’ 등등요. 그런데 그게 왜 안 지켜지는 지 아십니까? 그 계획안에는 자기 자신만 있었지, ‘주님이 오셔서 도와주셔야 가능합니다’ 라는 내용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세웠으니, 내가 이뤄내야 한다는 오만함은, 우리나 유다나 별로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 이스라엘 생존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이르도록..” 즉 주님은 보다 더 멀리 보시며 여기 있는 사람들 뿐 아니라 더 많은 이를 살리겠다는 의도가 실려있는데요.
우리는 지금 잘 되는 것만 바랍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도 잘 안되고, 나중에는 미처 생각지도 못하는 일을 발견하는 헛똑똑이가 되는데요. 베드로가 유다와 달랐던 것은, 그리 똑똑하진 않았지만, 뉘우치고 다시 돌아와 부지런히 고요하게 그 가르침을 되새기며 살아냈기 때문입니다. 어지러운 이 시대에 주님을 믿고 잘 살아가는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는데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