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5주간 화요일. 민수 21,4-9; 요한 8,21-30
우리들의 모습을 가만히 보면 신기한 구석이 있습니다. 분명 미사를 통해 말씀도 듣고, 거룩한 성체도 모시지만, 이 성당을 나가면 우리의 행동이 평상시와 그리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달라지려고 왔지만, 의지력의 문제인지, 아니면 그럴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인지, 마냥 이 생활을 되풀이 하고 있는데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가만히 이 점을 보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저 자기가 느낀 기분에 빠져 살 때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를 헤아리기에 앞서, 일단 나의 기분을 더 앞에 두면, 실수는 당연할 수 밖에 없고요. 상대방을 이해하지도 못하지요. 독서에서 그런 장면이 나옵니다. ‘약속된 땅을 가고 있을 무렵, 백성들의 마음은 조급해졌고, 하느님과 모세가 약속한 것이 보이지 않기에 불평을 하고 있으며,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만나는 진저리가 난다’ 고요. 충분히 이런 심정, 공감이 갑니다. 그래서 여기서 우리가 봐야 할 점은, 내가 당장에 생각한, 내가 예상한 것과 다르게 돌아갈 때, 이를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점입니다.
여기서 우린 이런 것을 만나게 됩니다. 진정 하느님을 만나고 싶다면, 나의 자세는 어떠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저 마음으로만 ‘기도해야지, 사랑을 해야지..’ 했지만 실제 그게 잘 안 되었던 이유는 여러분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실상 이유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세상을 남들과 살길 바라면서 신앙생활도 잘 되길 바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열심하신 분들은 압니다. ‘감각적인 모든 맛을 다 보고, 자기 만족이 다 이뤄지길 바라는 이는 주님의 뜻을 만나기 힘들다는 사실’ 을요. 그래서 십자가의 성요한은 우리에게 4가지를 말했습니다.
1. 주님의 생애를 묵상하며 그분과 닮아지도록 행동하라. 2. 하느님 보시기에 합당하지 않은 감각적 즐거움을 저버려라. 그게 힘들다면 일단 피하라. 3. 나의 집착을 찾아서 끊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만족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라. 4. 나의 만족을 찾지마라. 오히려 자기를 낮추어서 생각하고 자신을 내세우지 마라. 라고요.
가끔 교우분들과 기도나눔을 하면 이런 것을 발견합니다. 나눔속에서 자기 이야기보다는 다른 등장인물이 많이 등장합니다. 식구나 내게 상처 준 사람, 여러가지 주변 환경 등요. 그러나 내가 정말 가야 하고 선택할 것이 무언지는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데요. 이른바 내 중심이 서 있지 않으니 상황은 계속 꼬이고 예수님 방식대로 않으니 난감한 상황이 연속인데요. 오늘 복음 말씀에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일단 내 고집과 내 생각을 드러내기보다는 먼저 배운 데로 해 보는 것이, 초보자들의 기본 자세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막상 따라 해보다가 금방 시들해지는 우리의 인내심 부족이 문제인데요. 무엇이든 처음이 어렵지 숙달되면 그 때부터는 쉽습니다. 일단 여러분은 새벽미사라는 이 시간을 나오고 있잖습니까? 자기 자신을 뛰어넘는 차원을 조금씩 만나갈 때, 당신이 말씀하신 것이 무슨 뜻인 지 헤아릴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