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4주 화요일. 사도 11,19-26; 요한 10,22-30
개인적으로 등산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그래도 남들을 따라서 국내의 많은 산을 타보긴 했습니다. 그래도 재미있는 점을 발견한다면 정상은 한 지점이지만 올라가는 코스는 여러 개 라는 것인데요. 다르게 접근해보면 가봤던 산도 느낌이 다름을 느낍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내에도 예수 그리스도께 다가가는 기도코스가 있습니다. 이냐시오식, 갈멜식, 프란치스코식, 그 외 다양한 기도방법입니다. 수도원마다 몇 백년을 이어온 방식이 자리를 잡아 이제는 교우들도 그것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독서는 여러 지방을 다니며 주님을 전하고, 그 곳에도 하느님의 은총이 내린 것을 기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분명 다른 지역인데도, 통하는 그 무엇을 느끼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복음에서는 주님이 “내가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는 믿지 않는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한다.” 하시며 그들의 굳어버린 모습을 안타까워 하십니다.
학생들이나 청년을 보며 안타까운 장면을 발견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했다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 안타까움을 발견합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우리가 신앙을 모범답안에 끼워 맞추는 모양새를 갖고있었다.’ 라고요. 사실 우리가 그렇게 학교 교육을 받아왔지요. 뭔가 남과 다르면 불안한 것 같은.. 하지만 끼워 맞추면 뭐가 문제일까요? 대답은 교회가 가르쳐 주는데로 하고 있기에 언뜻 보기에는 별 문제없이 잘 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자신이 긍정하고 받아들인 것은 아니기에 대답에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열렬함이 묻어있지 않습니다. 당연히 교회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을 정도의 감각을 지닌 자신만의 영성도 나오지 않지요.
우리가 알던 산행코스도, 여러 가지 기도방식도, 누군가 다르게 접근했기에 주님을 더 다양하게 만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우리도 그런 것이 나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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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것이 나오려면...
1. 먼저 기본기를 확립한다.(교회가 가르쳐준..) 2. 나는 누구인가?를 알아본다. (좋아하는 예수님의 면, 받아들이지 못하는 예수님의 면을 살펴본다) 3.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에 대한 대답을 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