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4주간 금요일. 사도 13,26-33;요한 14,1-6
세상이 어렵다보니 서로에게 ‘자리’ 를 권해주고 권해받기를 원합니다. 당연히 제대로 된 과정을 밟으려는 이들에게는 엄청난 피해가 생기지요. 하지만 그런 자리도 결국은 영원성을 보장받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결혼할 때 반지를 주고 받습니다. 물론 사람의 사랑이, 변하는 속성을 가지지만 그래도 교환하는 예물의 재질이 다이아몬드를 원하는 것은 변치않는 사랑을 바라기 때문인데요. 플라톤의 저서 ‘국가론’ 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보통 사람에게 ‘정의가 무엇인가?’ 를 물어보면 대부분이 법률, 행위 규범 등을 이야기 한다. 하지만 그 법률이나 규범이 시대가 바뀌면서 의롭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면 그 때부터는 사람들은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고요. 불변할 것이라 믿었던 정의의 개념이 흔들리니까요. 하지만 그런 위기상황에서 찾는 것이 있습니다.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는 정의를 찾으려든다면 그 때에 사람의 마음 안에는 ‘철학적 마음’ 이 생겨서 더 나은 선(善)함을 찾는다는데요. 그럼 우리가 바라는 선함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당신은 복음에서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겠다.” 하십니다. 그런데 이 자리를 얻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습니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의 길이 쉽지않는 위기 상황을 만나야만 된다는 데 있습니다. 여기서 우린 이런 것을 알게 됩니다. ‘그동안 내가 쥐고 있던 줄이 튼튼한 지 아닌 지를 알려면, 흔들릴 때만이 비로소 알게된다’ 는 점입니다. 흔들릴 때, 위기가 왔을 때, 누구는 순교자처럼 그분의 증인이 되어 성인이 되고 복자가 되었지만, 반대로 위기를 어떻게든 모면하려 했던 이들은, 빌라도처럼 여전히 지금도 그의 이름을 사도신경 속에서 비겁자의 전형으로 불리고 있는데요.
한 달 전 타계한, 인텔의 CEO였던 앤드류 그로브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3류 기업은 위기에 의해 파괴되고, 2류 기업은 위기를 이겨내며, 1류 기업은 위기 덕분에 발전한다. 우리의 신앙도 1류 명품신앙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