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6주간 목요일. 사도 18,1-8; 요한 16,16-20
요사이 첫영성체 어린이들이 미사에 참여하는 기간입니다. 그들을 보면서 사람이 커 가는 것이 보이는데요. 성당이란 곳이 어린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있는 곳이지요. 어릴 때 처음 배울 때는 합장을 하면서 ‘기도손’을 잘합니다. 가르쳐준 대로 하는 나이이지요. 초등 고학년 때부터 중고생 시기는 슬슬 삐뚤어질 때입니다. 부모의 권위에 도전하면서 자립심을 키워가는 때지요. 슬슬 손이 내려갑니다. 친구는 좋지만 부모는 우습게 보이는 때이지요. 그러다가 청년이 되고 직장을 가지다보면 자기 세계에 빠져 삽니다. 신앙이란 것이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지요. 냉담도 다반사입니다. 이 시기는 초등, 중고생 부모가 될 때까지도 이어집니다.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를 들면서요. 또 열심하더라도 하느님께 '대가' 를 바라는 거래성 기도를 바치곤 합니다. 그러다가 더 나이가 들어 기도하면서 세상이 내맘 같지 않구나를 느끼며 누구에게 의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예전의 기도손은 나도 모르게, 어릴 때 그 때로 돌아가면서 기도를 바치는데요. 슬픈 현실 같지만 사람이 그렇습니다.
오늘 당신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은 원래 당신의 승천을 앞두고 하신 말씀이지만, 오늘 같은 어린이날을 염두하고 바라본다면 “어린이와 같이 되라” 하신 당신의 말씀과 연결이 되는 듯 보입니다. 어릴 때는 설명할 수는 없어도 뭔가 잘 해내고, 제대로 하고 싶어하는 첫마음이 있습니다.하느님이 주신 양심에 비추어서요. 하지만 사춘기를 지나면서 ‘더 이상 보지 못하는 단계’ 에 접어드는, 자기 생각에 가로막히는 시간이 옵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고 깨우침을 얻는 혜안(慧眼)의 때가 오면,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는 단계’ 에 접어들면서 인생이 뭔지, 삶이 뭔지 조금 아는데요. 이렇듯 구원을 얻는 데에도 과정이 필요합니다. 태도와 자세, 자기를 갈고 닦는 숙련의 시간과 성실한 부지런함이 동반되어야만, 변화되어 회심한 바오로처럼 예전의 것을 버리고 말씀 전파에 전념하는 그런 자세가 나올 수 있는데요.
미리미리 알아서 잘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대다수 사람들이 그렇지 못하지요. 하지만 자신의 인생에 대해 깊이 숙고하면서 간다면 오류를 줄이면서 갈 수는 있을 것입니다. 첫마음을 잘 지켜가며 새로움을 맞이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