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0 주간 금요일.
이제부터 몇 명의 이름을 거론해 보겠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을 맞춰보시기 바랍니다. ‘프란치스코 성인과 글라라 성녀’, ‘아빌라의 대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 ‘신심생활 입문을 지은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와 성녀 요안나 드 샹탈’. 답이 무엇일까요? 물론 하나는 남자요, 또 하나는 여자이지만 여기서의 진짜 답은, 남녀간에도 우정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람들입니다.
오늘 복음은 불편합니다. 보는 것만으로 간음했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가진 내면의 욕망을 건드리고 있는데요 실제 남성은 여성을, 여성은 남성을 필요로 합니다. 심지어 결혼을 한 이후에도 여러가지로 말이지요. 그래서 대다수 남녀간에는 에로스적 사랑만이 존재하고 언젠가는 잠자리를 같이 하는 것으로 끝난다고 여기거나 그래서 둘 사이가 가까와지기 힘들어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달랐습니다. 남녀간에도 순수한 우정이 있었으며, 이들의 대화는 하느님의 이야기로 가득했습니다. 이제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여러분이 그동안 듣지 못했던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번은 듣고 가야 할 이야기입니다. 남녀가 어떻게 서로에게 다가가 주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어느 때보다도 신부들은 고독과 침묵 속에서 복음 선포와 활동 그리고 개인적인 갈등과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완전히 일에 파묻혀 사는가 하면 또 다른 신부님들은 그 모든 것을 떠나 도피하고픈 유혹을 느낍니다. 이런 것을 아는 성녀 글라라는 성 프란치스코에게 이런 권고를 합니다. “일정한 기간 동안 침묵과 고요 속에서 힘을 얻고 모으는 것이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그러나 다시 세상에 나가 그 힘으로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대다수의 수녀님들은 신부님들에게 다가온 이런 고통의 말을 들었다고 해서, 동네 여인들 마냥,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떠벌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심 깊은 기도와 묵상 중에서 섬세한 느낌으로 동감하는, ‘내적인 나눔’ 을 만들어 갑니다. 이러한 수녀님들의 모습은 성녀 글라라의 특별하고도 독특한 소명을 이어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글라라 성녀의 침묵과 고요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안식처가 되어 주었고,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열매를 맺었습니다. 보통의 남녀는 서로를 바라보면서 욕망을 키워가지만, 그들은 남녀 친구의 얼굴 속에서 하느님 사랑을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이 마르타, 마리아와의 환대를 받으며 깊은 우정을 나누었듯이, 바오로 사도가 옷감장수 리디아 같은 여성의 초대를 받으며 우정을 나누었듯이 말입니다.
물론 역사 속에서 항상 거룩한 우정만이 지속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숙하지 못한 남녀 사이에서, 갑자기 성적인 욕망이 밀려 들어와 자신들의 욕망을 표출시킨 적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남녀간의 정신적인 우정은, 성적인 사랑으로 변질될 위험성이 항시 잠재되어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욕정(欲情)은 엄청난 에너지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독서 말씀처럼 “불이 지나간 뒤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욕정 다음에 오는 것을 발견할 줄 알 때 우린 쉽사리 휩쓸리지 않을 수 있는데요.
하느님은 우리에게 성(性)이라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것을 통해 남자다움, 여자다움이 뭔지를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서로에게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참된 우정으로 승화시켜 나갈 때, 그저 가지고만 있던 본성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동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닮은 모상들이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