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1주간 화요일. 1열왕 21,17-29; 마태 5,43-48
주부들은 더 좋은 상품을 찾으러 시장이나 마트로 다니고요. 심마니는 자연산 좋은 삼을 구하려고 산골짜기를 누빕니다. 운동선수를 뽑는 스카우터들은 이름난 선수들의 실력이 과연 진짜인지를 확인하려고, 세계를 누비며 경기장을 다닙니다. 어떤 음악가들은 처음에는 프로듀서가 만들어준 음색으로 음반을 만들다가 점차 자기 색깔과 맞는 것을 찾기 위해, 자신이 직접 제작하거나 악기를 만들기도 합니다. ‘퀸(Queen)’ 이라는 그룹의 브라이언 메이라는 기타리스트는 자신이 직접 기타를 만들었구요. ‘보스턴(Boston)’ 이라는 그룹의 리더 톰 숄츠는 M.I.T. 공대를 나온 실력으로 이펙터 기기를 직접 제작하여 판매까지도 하는 회사까지 차립니다. 이들은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요? ‘더 완전함’ 에 다가가기 위한 몸부림 아니겠습니까? 그것을 ‘남이 좋게 보느냐? 아니냐?’ 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선구안과 선택이 옳음을 스스로 찾아내고 실현해내는 작업이 즐거운 것이지요.
복음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모두들 그 완전함에 다다르고 싶어하지만 그 길에 접근하는 길은 쉽지만은 않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제대로 기도를 배우려는 이들은 담당 멘토 신부님에게 따끔한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도를 자기 마음대로 하기 때문입니다. 본인은 잘 하는 줄 알겠지만, 멘토 신부님들은 그게 머리를 굴려서 하는 기도인지 아닌 지가 보이기 때문인데요. 그분들도 그런 과정을 겪었기에 잘 아는 것이지요. 이렇듯 실패처럼 느껴지는 자신의 처지를 인정할 때 달라집니다. 독서에 아합왕처럼 말입니다. “제 옷을 찢고 맨 몸에 자루옷을 걸치고 단식에 들어갔다. 그는 자루옷을 입은 채, 자리에 누웠고 풀이 죽은 채 돌아다녔다.” 엘리야의 이야기를 듣고 정신을 차린 것이지요. 이렇듯 자신의 실수를, 잘못을 받아들일 때 우린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린 그 정도 수준에서 만족해버리면 안됩니다. 말씀에 나오지 않습니까?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하느님이 말씀하신 완전함에 접근해 갈 때, 점차 완전체에 가까워지면서 즐거움이 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해보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