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4주간 금요일. 호세 14,2-10; 마태 10,16-23
살면서 두려운 것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남들에게 반대를 받는 것’, ‘내 의견이 묵살되는 것’ 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얘기를 꺼내기조차 힘들어 합니다. 상처를 받을까봐 말이지요. 그래서 가만히 있으면 안전할까요? 해결될까요? 하지만 이는 자신을 오히려 위험으로 내모는 꼴인데요.
오늘 복음은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게 되면서 벌어질, 미래 현장의 사실과 안타까움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아슬아슬하면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라고 까지 말씀할까요? 쉽게 말해, 사지(死地)로 내몬다는 말이 맞는데요. 그런데 당신은 왜 그러실까요? 보통 사람들은 편안하려고 교회에 온다지만 당신은 반대되는 얘기를 하시니 말입니다.
저도 예전에 그랬습니다. 학생 때 질문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몰라서도 안했고요. 바보 같다는 말을 들을까봐 더 숨겼습니다. 그리고 30년 정도 지나니 알게 되었습니다. ‘아 나는 내 생각이 맞는 지 아닌지 점검하려는 생각조차 안 했었구나.’ 라는 것을요. 내가 안 다치려고 아무 것도 안했기에, 잃는 것도 없었기에 얻는 것도 없었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내 생각이 맞는 지, 아닌 지 부딪혔어야 내 생각을 고수할 것인지, 변화를 줘야 할 것인지 보였을텐데.. 그러면서 상대방의 반응과 나의 처신에 따라 내가 어찌해야 할 지 판단해야 했는데 가만히 있었음에 대해 후회가 들었습니다.
물론 당장 받게 될 부정적인 반응, 평가에 대해 달가울 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그 영의 가르침을 알려면 나의 생각이 가로막혀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과 내 주위와 부딪혀야만, 내 생각이 바른 지, 아닌 지에 대해 점검이 가능하고요. 그럴 때 제대로 된 것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독서에 나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깨닫고 분별있는 사람은 이를 알아라.” 깨달음과 분별력은 가진 내 것이 부딛힐 때에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이 위축되지 않으면서 그것을 헤아리길 바라셨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용기를 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