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5주일. 신명 30,10-14;콜로새서 1,15-20;루카 10,25-37
세계 수 많은 민족 중에 가장 우수하다고 알려져 있는 유태인들은, 하루에 매일 세 번씩을 읊으며 외우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 성경 구절을 통하여 하느님과 혹시라도 멀어졌던 마음을 다시 잡고, 주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키우고자 이 구절을 읊는다고 합니다. 그것은 오늘 1독서와 복음에 나온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입니다. 모든 것을 임할 때, 마음과, 목숨과, 힘과, 정신을 다한다면, 정말 그 어떤 것도 이겨나갈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그들은 그렇게 모든 힘을 다하며 살았기에 손꼽히는 우수한 민족이 되었는가 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 선택받고 하느님의 율법을 누구보다도 잘 지킨다는 그들의 현 실정은 어떠합니까? 열심한 그 마음이 오히려 이웃을 보지 못하고 자기 안에만 갇혀 있었기에, 항상 내전으로 불안합니다. 자기 민족만을 중시하고, 다른 민족은 천시하는 그들의 생활태도가 지금과 같은 화를 불러들인 것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어찌 유대인뿐이겠습니까? 요즘의 영국 사태나 미국의 대선주자가 말하고 있는 ‘고립주의’ 는 지금도 이어집니다. 그러면서 우리 각자에게도 이런 질문을 던져봐야 합니다. ‘내가 더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접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 마음을 막는 것은 무엇인가?’ 하고요.
모든 규정을 다 지킨다고 자부하던 율법교사에게 예수님은 ‘사마리아인의 비유’ 를 드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이방인이라 꺼리고, 자기보다 못하다고 여겼던 사마리아인을 일부러 비유로 들었던 예수님의 의도는 무엇이었겠습니까? 자만하고, 잘 살고 있다고 여기던 그들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 의도를 아는지 모르는지, 예수님의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율법교사의 표정은 어떻게 변하여 갔겠습니까? 자신만 옳다고 자신하던 그의 모습은 점차 ‘그렇다면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한 의문으로 변하여 갑니다. 그래서 이렇게 답합니다.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이제 그 의문은 우리에게도 던져집니다. 그저 성당에서 기도하고 미사 참례하고, 봉사활동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하던 우리들에게도 “누가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는 예수님의 질문이 그저 편하게 들리지만은 않습니다. 솔직히 우린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동안 나는 갚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잘 대해주었고, 나에게 좋은 말을 해주고, 잘해 주는 사람에게만 잘 대해주었으며, 그랬기에 다른 이웃들에 대한 반응에는 신경을 많이 쓰지 않았고, 또 그들이 내 마음에 들어올 여지도 주지 못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편하게 남을 도와주는 방법이 뭔지 아십니까? 돈 주면 됩니다. 그러면 다 되는 줄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물론 누구는 그것도 안합니다. 하지만 돈을 줄지 언정, 마음은 주지 않는 상태가 지금도 벌어지는데요.
집회서 7장 32절의 말씀을 소개해드리며 강론을 마치겠습니다.
“네 복이 완전해지도록
가난한 이에게 네 손길을 뻗어라
살아있는 모든 이에게 호의를 베풀고
죽은 이에 대한 호의를 거두지 마라.
우는 이들을 버려두지 말고
슬퍼하는 이들과 함께 슬퍼하여라
병자 방문을 주저하지 마라.
그런 행위로 말미암아 사랑을 받으리라.
모든 언행에서 너의 마지막 때를 생각하여라
그러면 결코 죄를 짓지 않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