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5주간 목요일

2016. 7. 14. 오전 7:03:08

글자

연중 15주간 목요일

  교우분들과 면담을 하다보면 아주 열심한 분들도 만나고요. 어떤 분은 행동까지는 못 옮기지만 모범적인 대답은 잘 하십니다. 또 어떤 분은 그냥 다니는 분들도 있습니다. 도덕경 41장에 이와 비슷한 말이 나옵니다. 모두의 이해를 위해 원문이 아닌 풀어서 말씀드립니다. ‘뛰어난 인간은 도()를 들으면 노력하여 그것을 실천하는데, 중간 정도의 사람은 도를 들으면 반신반의하고 부족한 이는 도를 들으면 비웃는다 라고요. 여러분은 어느 정도입니까?

  1독서에 이런 답을 말합니다. 주는 저희는 당신께 희망을 겁니다. 당신 이름 부르며 당신을 기억하는 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저의 영혼이 밤에 당신을 열망하며 저의 넋이 제 속에서 당신을 갈망합니다.” 우리도 이러한 대답을 하고 싶지만 무엇이 우리를 가로막을까요? 복음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그런데 우리 눈으로 보이에는 당신을 말씀하시는 멍에라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져서 감히 시도를 못하는 이도 많아보입니다. 설명을 위해 다시 도덕경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여기서는 도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으로 표현합니다. 참으로 밝은 도는 언뜻 보면 어두운 듯하고 앞서가는 도는 뒤로 후퇴하는 것처럼 보이며 평탄한 도는 쓰윽보면 울퉁불퉁한 것처럼 보인다.’ 십자가의 성 요한도 하느님을 바라보는 것을 어둔 밤의 상태로 설명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하느님을 믿으려면 먼저 자신의 욕망을 끊어야 하는데 그 과정이 박탈감과 상실로 느끼고요. 이성적인 눈으로 볼 때 믿음이라는 게 암담하기 느껴지기 때문이고요. 하느님이 너무 밝기에 갑자기 밝은 빛을 보면 눈을 못 뜰 정도로 깜깜하게 느껴지기에 어둔 밤이라고 말하는데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안식에 모두 가고 싶어하지만 실로 사람들이 큰 매력을 못 느낀다고 여기는 것은 언뜻 내가 생각하기에 불편하고, 거추장스럽고, 남들은 안 하고 있어서 못한다고 이미 결론 내리고 보고 있기 때문은 아닐런지요. 솔직하게 인정하겠습니다. 십자가라는 것은 지기 힘들구요. 사랑, 용서. 이거 내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허물고 받아들이면 괜히 지는 것 같고, 손해본다고 여기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몇 천년 전부터 지금까지 하느님은 같은 메시지를 말씀하셨고요. 그것을 따랐던 이들이 지금의 세상을 이루게 하였는데요.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