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6주일. 농민주일. 창세 18,1-10;콜로 1,24-28;루카 10,38-42
모든 이는 땅을 밟으며 길을 가야 하고요, 주어진 그 길을 잘 걸어가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불안해합니다. 표지판을 통해 이리로 가면 내가 가고자 하는 도착지가 나온다고 지시해주지만 아직 도달하지는 못했기에 답답하구요. 하늘이 어떤 모양을 하는 지, 날씨가 어떤 지에 따라 길이 막힐 수도 있고요. 그래서 계획했던 그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돌아가야 하기도 하는데요.
오늘은 1995년에 제정된 농민주일입니다. 우리는 도시인이지만 이 ‘도시’ 가 생기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땅을 갈아엎고 거기에 무언가를 심는 사람’ 있어야 가능했습니다. 인간의 삶에 가장 기본적인 ‘먹거리’ 가 형성되려면 그들의 땀과 수고를 잊으면 안되지요. 물론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삶을 사는 농민들도 우리처럼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같이 갑자기 비나 태풍이 닥칠 수도 있고요. 그래서 둑이나 담이 무너져 피해가 닥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려면 평상시의 내 삶을 잘 살펴봐야 하는데요.
(어제) 오늘 세례성사를 받는 이들도 그렇습니다. 내 인생이라는 땅에서 농사가 잘 되어야 하지요. 수확물을 내야 합니다. 그러려면 이 신앙이라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땅을 통해 자라나야 합니다. 그런데 땅이라는 것은 참 신기합니다. 그냥 눈으로 보기에 흙처럼만 보이지만, 거기에 뭔가를 심으면 식물이 자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라는 정도를 잘 관찰해야 하고요. 날씨와 기후에 따라 양분도 주고, 잡초도 뽑고, 언제 낫을 대어 수확을 해야 하는 지, 타이밍도 조절해야 합니다. 상황은 예년과 조금씩 차이가 생기니까요. 그리고 또 뭐가 필요합니까? ‘집중도’ 와 그것을 느끼는 ‘감각’을 키워야 합니다.
오늘 1독서에 아브라함은 요즘처럼 한창 더울 때 천막에 앉아있는데 자기 앞에 처음 보는 3사람이 서 있는 것을 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아브라함은 그들이 귀인(貴人)임을 단박에 알아차린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발 씻을 물도 대령하고, 빵에다가 송아지 요리까지 대접합니다. 물론 그러라고 시킨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알아차립니다. 융슝하게 그들을 대접하자 내년 이 맘 때에 아들이 생길 것이라는 약속을 얻습니다. 자~ 여기서 우리가 배울 점은 뭘까요? 어떤 것은 가르쳐 줘야 하지만, 그 이상이 되려면, 배운 것을 평소 잘 헤아리면서 상황을 보고 파악해 갈 때, 현명한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같은 경우, 세례를 받았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배운 것을 계속 되내이고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작업이 이뤄져야만 내 인생이 어떻게 풀려갈 지가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랬기에 복음에서 마르타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지요.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럼 마리아는 왜 말씀 듣는 것을 선택했을까요? 기도란 것이 그렇습니다. 남 보기에는 시간낭비 같고,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린 그 시간 속에서 이런 것을 얻게 되지요. ‘그럼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에 대한 답을 얻습니다. 막막하기만 했던 것이 마치 실타래가 풀려가듯 하나씩, 조금씩 풀려가는 것이 보입니다. 그래서 2독서에서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 말씀은 과거의 모든 시대와 세대에 감추어져 있던 신비입니다. 그런데 그 신비가 이제는 하느님의 성도들에게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우리는 그 드러남을 만나기 위해서, 가만히 못자리에 심겨진 벼의 모처럼 일단은 그 자리에 있어야 하구요.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고요한 장소에서 가만히 몸과 마음을 놔두며 기도를 해야하는 것입니다. 왜요? 잘 살려고요. 수확을 얻어내려고 말이지요. 하지만 이 가만히 있음을 하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기다림의 응시와 깨달음의 자세를 갖추지 못하면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요? 오늘 화답송에 잘 나옵니다. “함부로 혀를 놀리고, 친구와 이웃을 모욕하고, 이자를 받으려 돈놀이 하고 뇌물을 받는 행동”을 합니다. 이들은 가만히 있는 것을 못 견뎌하고 몸부림 치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여겼겠지만, 결국에는 화를 자초하고 말았는데요.
사랑하는 개포동 본당 교우 여러분
우리의 이 신앙은 끈기의 기다림과 관찰을 통해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내 인생이 잘 풀려나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과는 다른 방법을 사용하지만 오히려 이 방법을 통해야만 우리들을 참답게 살려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