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8주간 금요일.

2016. 8. 5. 오후 12: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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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8주간 금요일. 나훔 2,1-3,7; 마태 16,24-28

  교우분들을 보면 개인적으로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더 나은 방법이 있는데 왜 이렇게 하시지?’ 하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물어보면 예전부터 그렇게 해 왔어요. 우리끼리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왜 그러십니까?’ 하는 반응입니다.

 얼마 전, 박 신부님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교사회에서는 교안이란 것을 준비합니다. 매 주일마다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위한 가이드라인과 실행이 적힌 내용입니다. 이것을 신부님께 확인받아야, 제대로 된 교리를 가르칠 수 있습니다. 잘못 가르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여기서는 교안을 전부 손으로 써서 내더랍니다. 박 신부님이 여쭤보았답니다. 아니 시대가 어느 때인데 아직도 손으로 쓰고 있어요? 보관하기도 힘든데..하니까 교사가 답하길, 제가 생각하기로는 손으로 써야 기억에 오래남기 때문 이라고 답을 했답니다. 그런데 그 교사회의 선배교사가 하나가 컴퓨터로 교안을 써서 내더랍니다. 이에 그 교사보고 왜 선생님은 컴퓨터로 했어요?’ 물으니.. 이렇게 답하더랍니다. 아니 그 때는 집에 컴퓨터도 없었고, 교사회에도 컴퓨터가 하나 밖에 없어서 그렇게 손으로 썼던 거였어요...’ 라고요. 좀 황당하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 했던 지에 대해서는 확인조차 안하고, 그저 여태껏 해왔으니 그렇게 따랐을 뿐’..이라는 마인드가 20대 청년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다가왔는데요. 우리의 신앙도 그런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참 메시지의 본질은 보지 못하고 그저 풍문으로 들었던 것에 마냥 따라가거나 내 방식대로 곡해하여 받아들이는 태도인데요. 참 본질과는 관계없이 내 방식대로 하겠다는 것만큼 무서운 일도 없는데요.

  오늘 말씀이 그러한 내용입니다. 독서인 나훔 예언서에서는 불행하여라. 피의 성읍! 온통 거짓뿐이고 노획물로 가득한데, 노략질이 그치지 않는다. 채찍소리, 요란하게 굴러가는 바퀴소리, 달려오는 말, 튀어오르는 병거, 돌격하는 기병, 번뜩이는 칼, 번쩍이는 창, 수없이 살해된 자들, 시체더미 끝이 없는 주검, 사람들이 주검에 걸려 비틀거린다.” 참된 삶의 방식을 따르기보다 자기 욕심에 얼룩져버려서 그로인한 회복되기 어려운 악순환이 거듭되는 장면입니다. 그러기에 복음에서도 이런 말씀을 하시지요. 땜질 방식으로, 자기 방식으로 일을 하기보다는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고요 

 앞서 교사회의 일화처럼 막연하게, 어슴푸레 아는 것처럼 위험한 일은 없습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하는 일을 설명한답시고 합리화하는 시도도 감행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학생, 청년들에게서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 어른들 사이에서도 벌어지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방식을 따를 때, 나의 삶이 변화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나의 시각을 나 자신에게서 떼어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제대로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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