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9주일. 지혜 18,6-9; 히브 11,1-19; 루카 12,32-48
예전 본당에서 겪었던 일화를 소개하겠습니다. 교구가 인정한 단체 중에서 ‘지속적인 성체조배회’ 라는 게 있습니다. 지정허가를 받은 본당이 따로 마련된 ‘성체가 모셔진 감실방’ 앞에서 회원들이 1시간마다 돌아가면서 기도하는 신심 단체입니다. 헌데 그 본당이 예전에는 활동을 잘했더랍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교구와 단절이 되었고, 재교육의 기회가 막히면서, 회원들이 아닌 이들도 마음대로 드나들면서 규율도 사라지고, 기도 분위기도 엉망이 되었다면서, 난색을 표해왔습니다. 저도 교구에 알아보니 그 이야기는 사실이었습니다. 일단 교구에 부탁을 했습니다. ‘거기서 가르치고 있는 모든 규율과 규칙, 세부사항을 문서로 보내주십시오.’ 부탁한 문서가 도착하자, 저는 그 문서들을 복사를 하고서 ‘성체조배회가 어떤 곳인가?’ 강의를 시작하였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나서 본당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거의 1년 가량을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시달렸습니다. ‘그냥 예전처럼 하게 해 달라... 왜 그들만 거기 들어가게 하는 특혜를 주느냐?... 내 시간에 맞춰 기도하러 왔는데 왜 문을 잠가놓느냐?’ 등등의 불만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기존 회원들은 제게 부탁을 해왔습니다.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 지 가르쳐달라’ 고요. ‘1시간을 감실 앞에 있긴 있었는데 잘하고 있는 지, 아닌 지도 모르겠다’ 면서요. 이에 저는 그 분들도 사회활동을 하는 분들이기에 일주일에 3번만 시간을 내서, 1시간씩 기도를 할 수 있는 성경구절을 주고, 한 달에 12번, 총 5개월 동안 예수님의 생애를 바라보는 기도를 하였고요. 한 달 중 마지막 주에 저랑 만나서 기도한 것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예전부터 기도한 분들이라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보니, 역시나 부족한 점이 발견되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면이 있는 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주제는 ‘하느님의 사랑, 예수님의 탄생, 공생활, 사순, 부활이 나랑 무슨 관계가 있는 지’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눔을 하시면서 나온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 남의 이야기. 즉 그 사람으로 인해 내가 상처받은 이야기, 상처에서 헤어나오지 못함... 분심으로 인해 마음이 갈라져 집중할 수 없음... 기도가 좋다는 것은 아는데 왜 해야 하는지 모르기에 맛을 못 느낌... 예수님이 하신 일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 지를 왜 알아야 되는 지 조차 모름. 그래서 내가 원한 것만 기도했음... 현실에 안주하면서 ‘지금’ 만 편안하면 된다고 여기며 아무 문제없기만을 바람... 남과의 갈등관계가 빚어질까 두려워 바른 소리도 못하고 끙끙 앓고만 있음... 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그러십니까?
오늘 말씀이 그런 이야기입니다. 복음에서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놓고 있어라.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여러분이 기도를 잘 하고 싶다면 먼저 잘 기다려야만 합니다. 당신의 메시지가 언제 닥칠지 모르니까요. 그래서 제 사제 서품 성구는 열 처녀의 비유에 나오는 “항상 깨어있어라” 로 택하였습니다. 물론 그 때는 공동번역 성경이었기에 표현이 지금과 다르게 번역되어 있습니다만, 그 깨어있음이 저를 살리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잘 기다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1독서에 나옵니다. “그들이 어떠한 맹세들을 믿어야 하는 지 확실히 알고 용기를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자~ 우리가 왜 미사를 참례해야 합니까? 왜 기도해야 한답니까?이 대답을 아직도 못하고 다만..“그냥 해야하는 거니까요..” 이런 대답이시라면 그야말로 애는 쓰지만 효율은 없는 셈인데요. 방금 말씀처럼,, 확실히 알면 용기가 날텐데, 대다수가 주님의 말씀을 듣는 와중에도 실은 내 마음 속에서 딴 생각을 하는 이 실상은 무얼까요? 그분이 나하고 어떤 관계가 있는 지를 모르면, 당연히 시들해 질 수 밖에 없고 요. 힘이 빠질 수 밖에 없겠지요. 그 어떤 누구라도 말입니다.
앞서 그 본당의 성체조배회원들의 5개월 후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말씀드립니다. 물론 다 좋아라 하진 않았습니다. 중간에 탈락하고 포기한 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버텨낸 분들은 이런 나눔을 해주셨습니다. ‘하느님이 예수님이 나하고 어떤 관계였는 지도 모르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 했었는데 이제야 질서가 잡혔습니다... 처음에 몰랐는데, 기도시간이 늘어가면서 내가 그 분의 울타리에서 보호받고 있음을 알게되었습니다... 현실적으로 나아진 것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 문제에만 사로잡히지 않으면서 여러 문제를 편안하게 바라볼 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개포동 본당 교우 여러분.
2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사실 옛 사람들은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사람에게서만 인정받으며 만족을 얻는데 그치면 안되겠습니다. 먼저 하느님과 만날 때, 내 문제는 그제서야 풀려나간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만남은 나에게 힘과 용기를 가져다줍니다. 설령 사람이 나를 등을 져도, 세상이 나를 버릴 지라도.. 그 어떤 것도 나를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부조리한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그런 확신이 더더욱 필요한 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