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7주일. 하바 1,2-2,4; 2티모 1,6-14; 루카 17,5-10
직장에서, 학교에서, 학원에서, 도서관에서 연구실에서 심지어 집에서도 열심히 무언가를 한다고 하지만 일이 안 풀릴 때가 많아 속상하시지요? 저도 그렇습니다. 기도한다고 앉아는 있지만, 당신의 메시지가 생각처럼 비 오듯 쏟아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침묵으로 답하실 때가 많아 지치기도 합니다. 이처럼 서로 각자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그럼에도 비슷한 면은 있습니다. 그건 잘 기다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예술가가 'inspration' 창작의 영감을 얻고 싶듯이 우리도 살면서 그런 기발한 발상, 마치 구세주를 만나고 싶어합니다만, 그 영역의 주도권은 내가 갖고 있지는 않지요.
이미 우리 신앙인들은 그 연습을 잘 하고 있습니다. 전례력이 시작되는 대림 1주를 통해 구세주를 기다리고요. 기도할 때는 차분하게 당신의 음성을 기다립니다. 약속의 주님이 오시리라는 희망을 갖고서 말이지요. 그 희망은 이웃, 친구, 동료, 선후배 등을 만나면서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서 주님의 발자취를 찾는 작업을 통해 보여집니다. 사실 기다린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닙니다. ‘요사이 제일 반가운 사람은 누구냐?’ 라는 질문에 ‘택배기사요~’ 라는 대답처럼 모든 일이 신속하고, 평소보다 빨리, 눈 앞에서 과정이 착착 진행되는 것을 보고싶어하니까요. 하지만 어떤 때는 잠시 묻어두면서 시간이 흘러야 한참 묵혀 있어야 제 맛을 내는 것도 만납니다.
오늘 1독서에는 “늦어지는 듯 하더라도 너는 기다려라. 그것은 오고야 만다. 지체하지 않는다.” 면서 하느님은 끝내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기에 성실하게 잘 기다려야 함을 알려주시고요. 그건 사람은 복음에 나와 있듯, “너희도 분부를 받은대로 다 하고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라고 대답하면서 자기 역할은 하되, 드러내지 않는 겸손한 자세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교회는 잘 기다리면서 성실하게 묵묵히 임하며 드러내지 않는 삶을 가르쳐왔지만 우리가 사는 이 현실은 꼭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드러내고, PR하며 남 앞에 나설 때 ‘내가 사는 의미를 알 수 있다’ 여기고요. 자랑하고 있는 척을 하면서 ‘남보다 우월하게 사는 것이 진짜 인생’ 이라고 여기는 이도 있습니다. 게다가 그런 능력이 있다는 사람을 가만히 보노라면 분명 잘하는 면을 보기도 하지만 그 안에는 부풀려진 거품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는데요.
사랑하는 개포동 교우 여러분
진정한 실력자는 뽐내지 않습니다. 이들은 남 앞에 서기를 꺼립니다. 높은 자리보다 낮은 자리에 앉으려 하고, 오히려 그런 자세를 남들이 높게 여기는데요. 2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 안에 머무르시는 성령의 도움으로 그대가 맡은 그 훌륭한 것을 지키십시오.” 그동안 주님의 선물과 우리의 노력으로 받은 것을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잘 지켜내면서, 더 훌륭한 것을 만나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