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3주간 수요일.

2016. 9. 7. 오후 2:2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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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3주간 수요일. 1고린 7,25-31; 루카 6,20-26

  많은 분들이 행복하길 바랍니다. 그 행복이 어떤 성격의 행복인지는 사람마다 다르기에 잘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만약 행복이 삶의 목표라면 아직 목표에 다다르지 못했기에 불행함을 느낄 것이구요. 행복이 삶의 과정이라면 순간적으로 지나갈 것이기에, 만나더라도 사그라질까봐 불안할 지도 모릅니다.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메시지의 핵심이라 일컬을 수 있는 행복선언을 말씀하고 계시지만 많은 이들이 이 메시지를 별로 와 닿지 않게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복음의 메시지가 단순하게 죽고 난 다음에 받을 미래의 보상이라고 여기기에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여기는 것일까요?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떠나야 할 사람이 영원히 살 것처럼 달려들면 불행할 수 밖에 없겠지요. 물론 우린 현실을 살고 있고요, 어떻게든 살아내야만 합니다. 하지만 너무 현실에 딱 붙어살면, 그것만이 최선이라 여기는 착각에 빠져 옴짝달싹 못하고 답을 찾지 못한 채 굳어버릴 수 있는데요. 그러기에 우린 잠시 떨어져 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칼의 노래라는 작품을 지은 소설가 김훈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이 저자의 매력은 쓰는 문장이 군더더기 없는 단호함에 있는데요. 그럴 수 있었던 배경은 지금도 글을 쓸 때 컴퓨터가 아닌 연필로 원고지에다가 쓴답니다. 그러다 작품 하나 탈고를 하면 방에 지우개 때가 몇 삽이 나온다는데요. 계속 보면서 다듬어 간 것이지요. 마치 조각품처럼 말입니다. 저도 강론을 매일 쓸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일단 써놓고 6시간 정도 지났다가 다시 봅니다. 그러면 그 때 보이지 않았던 군더더기가 불필요함이 보입니다. 그러면서 다듬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원하는 행복도 그렇게 만나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행복이란 나중에 한꺼번에 몰려 오는 것도 아니고요. ‘당장 다가온 것이 전부도 아닐 것입니다. 그러기에 행복이란 것이 마치 나중에 다가올 미래의 보상정도로만 여긴다면, 많은 이들은 지칠 것입니다. 현실의 고통 때문에 말입니다. 그렇다고 지금 현실에서만 찾는다면 그 행복도 설익은 행복일 것입니다. 그것이 전부는 아니니까요. 우리는 현재를 살면서 미래를 기다립니다. 그러면서 이미 과거를 통해 만났던 행복도 있었습니다. 순간순간 속에서,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잘 찾아가는 신비를 발견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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