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9주일.탈출 17,8-13; 2티모 3,14-4,2; 루카 18,1-18*
그동안 많은 시간을 살아오시면서 공부를 어떻게 해오셨습니까? 갑작스레 뜬금없이 ‘왠 공부냐?’ 하시겠습니다만, 오늘 주님이 주신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세상에서 공부하는 방식도 이러할진대, 하느님께 나아가는 공부야말로 더 자세를 제대로 해야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동안 우리가 해왔던 공부가 성적을 올리기 위한 공부, 자격증 따기 위한 공부였기에 이런 목적을 이루거나 끝내면 그동안 열중다했던 책을 보지 않거나 잊거나 버리는 삶이었는데요. 제가 여기서 어떤 새로운 것을 제시하기란 어렵습니다. 다만 그동안 듣고, 보던 것을 잘 복습해야 하는데요. 그래야 미래를 잘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시간을 통해 전부를 다룰 수는 없겠지만 오늘 말씀에 비추어서 서양인의 사고방식에서 나온 공부법, 그리고 다산 정약용 선생을 통해 나온 공부 방법을 소개해 드리면서 성경을 읽고 그대로 살아야 하는 우리가 어디로 가야할 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토미즘을 연구한 앙토냉 질베르 신부님의 공부법입니다. 1, ‘지성인은 신성한 부름을 받는다.’입니다. 모두 각자 해야 할 소명이 있습니다. 그 소명을 계발하려면 몇 가지가 필요한데요. 세상을 보는 통찰력, 성실한 꾸준함, 그리고 오랫동안 자신을 시험해보는 시간과 단계가 필요하답니다. 우리에게 실제 뭔가 할 수 있는 주어진 시간은 100년도 안됩니다. 한계의 시간 속에서 뭔가를 해야만 합니다. 당연히 인내를 해야 한다면 조직적이고 총명한 인내가 필요하고요. 적은 시간에서 집중할 때 뭔가가 나올 수 있습니다. 2. 지성인은 혼자가 아니랍니다. 즉 공부를 하더라도 고립된 공부를 해서는 안됩니다. 온전히 나만을 위한 공부가 아닌, 연대감이 느껴지는 공부가 될 때, 인류가 원하는 구원의 목소리를 던질 수 있는 공부가 됩니다. 그래야 죽은 공부가 안되기 때문이지요. 3. 지성인은 자신의 시대에 속할 수 밖에 없다. 입니다. 그렇지요 우린 내가 살고 있는 21세기 안에서 뭔가를 제시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이미 돌아가신 분들의 연구업적에서 좋은 것을 활용해 나갈 때 단순한 취미정도 수준의 ‘애호가 수준’에서 벗어나, 시대의 부름에 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다산 정약용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이번에는 세부적인 얘기를 거론하겠습니다. 1. ‘성의병심(誠意秉心)’ 하랍니다. 즉 뜻을 정성스레 하고, 마음을 다 잡아 몰두하랍니다. 정성이 없어서는 안되고, 정성만 가지고도 안되는 것이 우리가 만나는 일이지요. 우선 마음을 확고하게 붙들어 집중하랍니다. 2. ‘간난불최(艱難不摧)’입니다. 어떤 역경과 시련에도 꺾이지 않는다는 말로써, 사람은 평상시는 남들과 비슷해 보이더라도 위기 앞에서 진면목이 드러납니다. 근면과 검소로 살아남아야 함을 이야기 하고 있고요. 3. 포름부절(庖廩不絶)입니다. 계속되는 토론을 통해 문제를 심화하고 성과를 나누어야 진정한 소통이 된다는 말인데요. 즉 남의 말에 귀를 막고 있으면 발전이 없다는 말이지요. 어떻습니까? 동, 서양 서로 비슷한 면이 있지요? 게다가 기도하는 삶과도 비슷하지 않습니까?
제가 이런 이야기를 꺼낸 이유를 이제야 말씀드립니다. 오늘 말씀에서 그런 것들이 나왔습니다. 복음의 가난한 과부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달라’ 는 정성어린 간청에 마음에도 없던 재판관의 판결을 이끌어 내고 있고요. 1독서에서는 모세의 손에 힘이 빠지자 아론과 후르가 각각 옆에서 그의 팔을 들어주며 도와주고 있습니다. 2독서에서는 “그대는 그대가 배워서 확실히 믿은 것을 지키십시오. 꾸준히 계속하십시오. 끈기를 다해 가르치면서 타이르십시오.” 라고 나옵니다. 그동안 기도를 할 때 정성껏 하기보다, 절실히, 간절하게 바치기 보다 앵무새처럼 건조하게 바쳤던 때가 얼마나 많이 있었습니까? 계속해서 모두를 위해 뭔가 제대로 하는 자세가 필요한데요.
사랑하는 인헌동 교우 여러분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배운 것이 허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종교란 그런 거지 뭐~~’ 라고 여기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세상의 공부도 하나를 연구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를 너머서는 하느님이 가르쳐주신 것들은 우리가 아직 건드려보지도 못한 것이 너무나 무궁무진하게 많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가벼이 여기다가는, 뻔하게 여기다가는 오히려 내가 우스워질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과 욥과의 대화에도 그렇지 않습니까? 욥이 하느님에게 뭔가 불평을 하니 당신이 말씀하시죠. “너는 바다의 원천까지 가 보고 심연의 밑바닥을 걸어 보았느냐? 너는 별자리들을 제시간에 이끌어 내고 큰곰자리를 그 아기별들과 함께 인도할 수 있느냐?”(욥38장) 우린 모르지요. 그동안 나름 배운 것을 다시금 잘 살피시기 바랍니다. 거기서 여러분이 원한 것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