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즈카 2,14-17;마태 12,46-50
보통 사람들은 어떤 일을 접했을 때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모든 일을 내가 다 해내어야 한다.’ 뭐 아주 틀린 말도 아닙니다. 결국 자기가 할 몫이니까요. 하지만 좀 자세히 들여다보지요. 과연 그럴까요? 작은 거 하나를 하려해도 일단 심장이 뛰고 피가 돌아야 하고요. 천성(天性)상, 태생(胎生)상 갖고 태어난 것이 있기에, 가능한 것도 어려운 일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가올 상황을 준비했다고 꼭 잘되리란 보장도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성가 중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나의 생명 드리니, 나의 음성 드리니, 나의 재능 드리니’ 내 것인데 왜 바치겠다고 할까요? 처음에는 온전히 자기 것인줄로만 알았는데, 실은 가만히 들여다보니, 내 것 인줄로만 알았던 것마저 내가 노력했다고 여겼던 것마저도, 실은 당신께서 주시고 안배해 주셨기에 가능했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까지 다다르게 되면, 나는 하느님을 예전과 다르게 바라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기복적이고 원하는 것만 얻어내기 바빴던 기도가, 나중에는 좋아도, 힘들어도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자세로 바뀌는데요.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입니다. 자헌(自獻), 스스로 자신을 봉헌했다는 것이지요. 어린 나이에 성모님 본인이 할 수는 없었을 것이고 부모님인 요아킴과 안나가 그렇게 했지요. 이는 우리가 하고 있는 유아 세례와도 연관성을 가집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종교는 자유이기에 우리 아이가 커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하겠다’ 고요. 일단 그럴 듯하게 들립니다만, 왜 여러분은 아이가 원치도 않는데 그 비싼 가격의 유아식을 먹이고, 비싼 브랜드의 기저귀를 채우고, 소문난 유치원을 보냅니까? 심지어 당사자인 애한테 물어보지도 않고요. 하물며 그러한 것도 잘 따져서 아이에게 제시하는데, 좋은 사람으로 커가게 하는 이 신앙에 대해서는, ‘신앙선택은 네 맘대로 하셔요’ 라고 방관을 하고 있을까요? 이는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나는 네가 좋은 학교,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는 바라지만, 네 인성이나 성품, 마음씀씀이, 부모에 대한 효도, 사회에 기여하는 자세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는 말과 같지 않을까요? 학원은 그런 것과는 상관없는 곳이니까요. 그래서 많은 부모님들이 교회를 보내는 시간과 학원시간이 겹치면, 교회가 순위에서 밀리지요. 하지만 그런 시절을 끝낸 부모님들은 간혹 고백하십니다. ‘정작 좋은 학교, 좋은 직장에 보내긴 했지만, 이 아이는 정말 내가 바라던 것과 다르게 살고있어요' 라고요.
주님께 자신을 바치면 뭐가 이뤄질까요? 독서에 나옵니다. “정녕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물리라” 당신께 나를 봉헌하면 ‘그 모든 일은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함께 할 때 가능할 수 있음’ 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삶에서 오는 불안감이나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른바 해방된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자신의 능력으로만 해결하려든다면 그 교만함이 늪처럼 헤어날 수 없게 만들 수 있는데요. 그럴듯한 스펙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를 내신 분을 아는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