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요사이 본당에서는 각 분과마다 내년 예산을 편성 중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내어주신 교무금으로 한 해 동안의 본당살림을 해야지요. 전기세, 수도세도 내야 하고요. 각종 기물도 보완하고 활동하시는 분들의 단체가 원활하게 돌아가게도 하고요. 어려우신 분들을 돕는 등 많은 일을 합니다. 보통 본당들은 예년과 달라질 것이 없을지 모르지만 우리 본당은 다르지요. 일단 동네가 달라졌고요. 교우분들의 마음도 안정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지난 4-5년간의 사목 계획서를 보며 기존과 다른 변화가 필요해졌습니다. 단순하게 비용을 줄이는 차원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균등하게 배분하며 필요없는 낭비가 없어야 하니까요. 세상도 그렇습니다. 예전과 다름없이 살고픈 것이 보통 사람들의 염원이지만 분명 오늘은 어제와 다르지요. 상황이 달라지면 다른만큼 변화도 필요한데요.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낫을 대어 수확을 시작하십시오. 땅의 곡식이 무르익어 수확할 때가 왔습니다.” 곡식이 계속 매달려 있고 싶다고 하여 매달려만 있으면 어찌 될까요? 그 좋았던 것이 그냥 말라 비틀어버리지요. 복음에도 사람들이 아름다운 성전을 보며 감탄해 하지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물론 안 해본 일, 안 가본 길은 두렵습니다. 막연하고 불안합니다. 게다가 잘 있던 것이 없어지거나 사라지는 것도 원치 않습니다. 하지만 우린 이미 약속을 받아놨습니다. 묵시록의 말씀이요, 알렐루야에 나왔습니다. “너는 죽을 때까지 충실하여라 내가 생명의 화관을 너에게 주겠다.” 그냥 주어진 것에 안주해서만은 안되겠는데요.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을 맞이하면서 그녀의 삶을 바라봅니다. 분명 귀에 솔깃하고 더 괜찮게 들리는 조건이 주어지는데도 그것에 휘둘리지 않고 더 참된 것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세상의 변화 속에서도 밑에 깔려있는 가장 근본적인, 그것이 지탱해주는 근원적인 원리와 규칙이 있습니다. 그런 속에서 더 나은 변화와 선택을 해 나가간다면 원칙을 지킨다고 고루하지 않고요. 흐름을 따른다고 본래 자세 속에서 흐트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겐 그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