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2주 수요일.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이사40,25-31; 마태 11,28-30
힘든 거, 어려운 거, 부담가는 것을 꺼리고 피하는 세상이라지만 오히려 그럴때에야 비로소 힘을 얻는 이들이 있습니다. 당시엔 잘 몰랐지만 지나보니까 알게 된 점인데요. 이건 제 개인적인 체험입니다. 사제 서품을 받고서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교우분들에게 첫강복을 주는 일입니다. 강복은 꼭 우리 본당 신자들에게만 해당되지는 않습니다. 어떤 분은 ‘효험이 좋다’ 면서 모든 신부님을 돌면서 받는 이도 있습니다. 당연히 시간이 길러지지요. 제가 서품을 받던 때는 7월의 아주 더운 여름이었습니다. 제의를 입으려면 이미 입은 옷에다가 몇 겹으로 겹쳐입어야 하기에 바람도 통하지 않는 옷이고, 덥더라도 마음과 정성의 면으로만 따지면 지금보다 훨씬 지극 정성했겠지요. 그렇게 한 분 한 분에게 안수를 드렸지만 오히려 마음이 안정되었고 지친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엷은 미소가 흘렀던 것을 기억합니다. ‘별로 힘들지 않았다’ 고 여겼었지만 지나보니 그건 주님의 은총이었습니다.
오늘 당신은 이런 말씀을 하시지요.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새 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날개치며 올라간다. 그들은 뛰어도 지칠줄 모르고 걸어도 피곤한 줄 모른다.” 당신의 일을 하면서 힘이 빠지고 지치기보다 오히려 활기찼다는 얘기인데요. 그래서 그런 지 복음에도 보면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답니다.” 이렇듯 ‘네가 힘든 거 아는데 하지만 그것이 널 지치게 하진 않는다’ 고 말씀하시지만 교우분들은 주님의 일을 하면서 왜 지칠까요?
오늘 암브로시오 주교학자 기념일을 맞이하면서 이런 것을 알게됩니다. 암브로시오 주교님은 당대에 천주교를 반대하는 세력과 맞서야 했고 꾸준하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칠 수 있고요. 꾸준하고 일관된 자세를 가지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나가 떨어지기 십상이고, 알아주는 사람도 별로 없기에 대충하다가 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겐 소명의식이 있었습니다. 그 소명의식이 시키는 데로 하면서 그것이 본인을 태우게 만드는 연료가 되고, 그 연료가 나를 만들어 준다는 사실을 아셨던 모양입니다. 마치 신부가 신자들이 은총을 받는 모습에 감동의 자극을 받듯이 우리도 너무 자기문제에만 빠지기보다 멀리 제대로 가려면 하느님이 알려주신 방법대로 배운 데로 하나하나 해가면서 가까이 있는 것부터 시작하여 꾸준히 나아갈 때 마침내 그 길에 다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