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3주간 월요일. 민수 24,2-17; 마태 21,23-27
며칠 전 국회의원들에 의해 가결된 ‘탄핵소추안’ 은 그들이 능동적으로 표결을 내려 결정 내린 사안이 아니었지요. 국민들이 밥상을 다 차려놓고 그들은 숟가락만 올려놓는 형태였습니다. 한 나라의 입법권자요, 헌법을 수호한다는 이들이, 자신이 가진 소명감을 통해 결정과 선택을 내리기보다는, 남의 눈치를 보고 분위기에 편승하며, 자기 이득에 더 열을 올리는 사태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닌 모양인데요.
제정이 아직 완전히 분리되지 않았던 예수님 시대 때 당신은 율법학자들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하늘에서냐? 아니면 사람에게서냐?” 갑자기 던져진 질문에 이들은 머리를 굴립니다. “‘하늘에서 왔다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았느냐?’ 하고 우리에게 말할 것이오. 그렇다고 ‘사람에게서 왔다 하자니, 군중이 두렵소. 그들이 모두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니 말이오.” 그래서 그들은 “모르겠소” 라는 어이없는 대답을 내놓는데요.
현 사안과 너무 비슷하게 돌아가는 바람에 씁쓸한 웃음을 짓게 되었는데요. 우린 진리를 따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8장에 보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라는 유명한 말씀이 나옵니다. 즉 참된 것을 따라갈 때,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 사람인지를 알고요. 내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 지를 깨닫습니다. 답을 이미 알고 있기에 당연히 군더더기가 없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우분들과 면담을 하다보면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있는데요. 그것은 이미지로 살려는 태도입니다. 진짜 나의 모습을 인정하기보다는 ‘원래 모습보다 남이 나를 잘 봐주길.. 있는 척하는 것이 나의 진짜 모습인양 인정해주길..’ 바라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남들은 알지요. 관계가 먼 사람들은 가끔가다 만나니 내 원래 모습을 못 알아챌 수 있겠지만, 가까운 사람은 너무나 잘 알지요. 우리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말입니다. 옥신각신하며 좋은 모습만을 보이려는 율법학자들을 통해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그 무언가가 보이지 않으십니까? 이제 우리도 당신의 질문에 응답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요?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왔다’ 고요. 나의 고집과 헛된 욕심에 가로막히지 않을 때 우린 달라질 수 있습니다. 민수기 말씀처럼 “전능하신 분의 환시를 보고 쓰러지지만 눈은 뜨이게 된다.” 비록 개인적으로 충격은 받을 수 있겠지만 오히려 그 시간이 나를 살려주기에 진정한 참된 삶으로 옮겨갈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