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2주일. 이사야 11,1-10; 로마 15,4-9; 마태 3,1-12
오늘은 대림 2주일이자 교회에서 인권주일이며, 사회교리주간으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우린 언젠가부터 교회인들은 사회문제에 대해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왜 사회문제에 관해 목소리를 내야 할까요? 독일 루터파 신학자이며 나치즘에 반대했던 투쟁가인 ‘마르틴 니묄러’ 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들이 공산주의자들을 끌어낼 때 나는 침묵했습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사회주의자들을 끌어낼 때 나는 침묵했습니다.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끌어낼 때 나는 침묵했습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나를 끌어내기 시작했을 때 그제야 나는 알았습니다. 나를 위해 저항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우린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공동체의 아픔을 몰라라 해서는 안되는데요.
여러분 ‘사회교리’ 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지금부터 120년 전, 레오 13세 교황님은 비참한 노동자들의 상황을 보면서 ‘이제 본인은 노동자 문제에 개입할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면서 『새로운 사태』라는 회칙을 내놓으셨습니다. 왜 그럼 교황님은 세상의 일에 관심을 가지셨을까요? 태초에 하느님은 아담과 후손에게 땅을 맡기면서 "이건 네꺼다"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잘 돌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주인과 종의 개념이 생겨나고, 노동자를 함부로 대하면서, 고용주와 노동자와의 불공정한 계약이 생겨났습니다. 이에 19세기에는 아이들이 공장에서 18시간 동안 먹을 것도 잘 안 주고 잠도 잘 재우지 않으면서 생산을 위한 소비구조를 만들어냅니다. 여기서 국가와 권력에 대한 새로운 개념, 노동과 소유에 관한 새로운 형태의 문제가 우리가 배운 복음정신과의 마찰을 빚습니다. 즉,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쓸모의 대상으로 여기면서 벌어졌던 여러 문제를 교회의 바른 시각을 가지고 보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세상을 만드셨기에, 교회라는 곳도 사람이 모여 있기에 사회와 동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린 성경 말씀을 들으며 주님이 주신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아차립니다. 1독서에 보면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함이다.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데로 판결하지 않고 자기 귀에 들리는 대로 심판하지 않으리라.” 라고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우린 당신의 영을 내 영혼의 기본으로 삼았기에 그 양심이 시키는 데로 움직여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습니다. 마음을 잘 잡았다 하더라도 교묘하게 이 마음 안에 이권이 개입합니다. 더 득실을 따집니다. 거기서 나만 살겠다는 안간힘도 한 몫을 합니다. 자~ 이제 판이 어떻게 돌아갈까요? 복음에 보면 세례자 요한이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면서 사람들에게 회개를 권면하고 세례를 주면서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는 준비를 시킵니다. 이게 요즘말로 트랜드가 되고, 좋은 것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바리사이나 사두가이도 세례를 받으러 옵니다. 하지만 요한은 말하지요. “독사의 자식들아,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주더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실로 알 만한 사람들이 실천은 하지 않고 좋은 것만 취하려는, 편취하려는 형태에 강한 비판을 가합니다. 물론 이런 회개의 삶이 쉽지는 않습니다. 남처럼 살지 않아야 하고, 당연하게 따라오는 따돌림도 감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2독서는 이런 위로를 안겨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서 인내를 배우고 위로를 받아 희망을 간직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개포동 본당 교우 여러분
우리 사회교리는 모든 공직자들에게 봉사를 강조합니다. 개인이 사는 목적이 더 큰 선(善)을 완성하는 것처럼, 공동체의 목적은 공동선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공동선에 기여하는 이들은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이 맡은 공동체의 선을 바라보면서 윤리적인 기준에 따라 역할을 하는 이들입니다. 게다가 우리 모두는 사회인들입니다. 나름 어디에서건 작더라도 한 자리를 맡고 있습니다. 당연히 서로를 위한 관심이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기 자리만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 누구처럼 살기보다 서로를 살리고 나를 살리기 위해 나는 이 사회에서 무언가를 해야하는 이들입니다. 여러분들의 좋은 선택을 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