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2주간 월요일. 티토 1,1-9;루카 17,1-6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얼마나 잘 다스려 나가십니까? 사람들이 언젠가부터 자기 기분에 도취되어 그 기분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기분의 동물’ 이 되어가고 있고요. 자기가 원한 것에만 몰두하고 ‘꽂힌 인물’ 들이 많던데요. 그러다보면 본인이 어디로 흘러가는 지 잘 모르고 놓치게 되는 사태를 맞이하는데요. 중국 명나라 시대의 문인인 진계유의 글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고요히 앉아본 뒤에야 보통 때의 기운이 경박했음을 알았다
침묵을 지킨 뒤에야 지난 날의 언어가 조급했음을 알았다
일을 되돌아 본 뒤에야 전 날의 시간을 허비했음을 알았다
문을 닫아건 뒤에야 앞서의 사귐이 지나쳤음을 알았다
욕심을 줄인 뒤에야 예전의 잘못이 많았음을 알았다
정을 쏟은 뒤에야 평상시 마음 씀씀이 각박했음을 알았다’
사람이 이처럼 지난 뒤에야 비로소 알아차리는 습성이 있나 봅니다. 그게 처음에는 옳은 줄 알았는데 지나보니 그건 내 욕심이고 자만이고 생각과 사랑이 짧았음을 깨닫곤 하는데요.
오늘도 그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라” 자신을 너무 과신하다보면 그르치는 결과를 맞이하지요. 다른 이에 대한 사랑도 안 나오게 되고요. 특히 남 앞에 서야 하는 공직자나 성당의 단체장들도 여기에서 예외는 아닙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려주기도 하는데요. 그랬기에 독서에도 “감독은 하느님의 관리인으로 흠잡을 데 없어야 하고, 거만하지 않고, 쉽사리 화내지 않고, 술꾼이나, 탐욕스럽지 않고, 신중하고, 의롭고, 거룩하고 자제력이 있어야 하고 가르침을 받은 대로 진정한 말씀을 굳게 지키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라고 말하는데요.
솔직히 우리가 몰라서 못 지켰겠습니까? 본인 자신을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저도 나이가 들수록 고민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처신’에 관한 문제이지요. 사람이 그렇지요. 어리면 남들이 어린가보다 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자리한 위치가 높을수록 나이가 많을수록 이를 지켜보는 다른 사람들의 눈높이도 올라가게 마련입니다. 우리 자신을 잘 바라보며 하느님이 더 원하시는 것을 찾아가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