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3주간 월요일

2016. 11. 15. 오후 3: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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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33주간 월요일. 묵시 1,1-4.5.;2,1-5; 루카 18,35-43

 내가 그나마 버틸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그게 무얼까요? 잘나고 못난 사람과 섞여 있으면서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런 말을 읖조리지요. 니가 아무리 그래도 너보단 낫다 라는 마음 아닐까요? 위축될 수 있고 우울할 수 있는 지경일 때 어쩌면 이런 탄식이 우릴 버티게 해줄 지 모르는데요. 하지만 하느님을 따른다는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진정한 자세가 필요하다면 무엇을 바라봐야 할까요? 그건 바로 현실 감각을 익히는 일일 것입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눈먼 이는 예수님께 이렇게 외칩니다.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과연 안 보이기에 단순히 답답해서였을까요? 어쩌면 불편하지만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면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익숙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부르짖었던 것은 더 나은 삶을 갈구하고 있어서겠지요. 이것은 회복을 간절히 원한다는 말도 됩니다. 그러기에 독서에도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내어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 신부 생활을 하다보니 이 세계에도 가져왔던 소명의식이 변질되는 것을 보곤 합니다. 저희도 그럴진대 세상 속에서 사는 여러분은 얼마나 힘드시겠습니까? 심리학 이론 중에 조해리의 창(Johari’s window)’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조셉 러프트(Joseph Luft)와 해리 잉햄(Harry Ingham)이라는 두 심리학자가 1955년에 한 논문에서 개발하여 조해리(Johari)라는 두 사람 이름의 앞부분을 합성해 만든 용어인데요. 여기에 따르면 인간의 자아는 4영역으로 구분된답니다. 나도 알고 남도 아는 나 나는 알지만 남은 모르는 나 나는 모르지만 남은 아는 나 나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나. 이렇게 하여 인간은 기껏해야 자신의 절반 정도만 안다는데요. 하지만 다 아는 것처럼 여길 때 여기서부터 개인은 물론 공동체까지 망칠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오는데요.

 자 그렇다면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길은 무엇일까요? 오늘 알렐루야에 나옵니다. 나를 따르는 이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그 빛은 혼자만 받고 끝나지 않습니다. 복음 마지막처럼 눈이 밝아진 그 사람을 보며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군중도 모두 그것을 보고 하느님께 찬미를 드렸다.” 이 빛은 고맙게도 퍼지는 성질이 있습니다. 함께 하면서 얻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이 얻은 것을 더 많이 나누십시오. 그것이 서로를 살려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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