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전 화요일.

2017. 1. 2. 오후 7:3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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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공현 전 화요일. 요한12,29-3,6; 요한 1,29-34

  교우분들과 면담을 하다보면 본인이 믿고 있다는 신앙에 대해 대단히 모범답안 같은 대답을 하는 분들을 만납니다. 이 말에 가르친데로 대답하는데 왜 그러냐?’ 라는 반론을 펴실 분도 계시겠습니다만,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모범답안대로 대답은 했을지언정, 현실적으로 그 대답대로 이 신앙을 살아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즉 평상시 자기가 쓰는 어법으로, 자기 체험에서 벌어진 바탕으로 이뤄진 대답이 아닌, 어떤 신부님이나 어떤 책에서 읽었던 것을 그대로 되내이는 광경을 많이 봅니다. 그런 대답을 듣고 있자면 뭔가 공허함이 밀려드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요.

  사실 우리들이 그렇습니다. 이 세상을 사는 사람이 신적인 영역과 만나게 되면 3가지 정도의 반응을 보입니다. 1. 신적인 세계 안에 사로잡힌 사람입니다. 이들은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감각적인 것을 거부하고, 순수하게 종교적인 것에만 관심을 두는 이들입니다. 2. 인간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교리를 배우면서 보통 사람들은 갈등에 사로잡힙니다. 아직은 그런 체험을 해 본 적도 없고, 해보고자 하는 용기도 없기에 그런 갈등과 불안이 부담스러워 복음적인 충고에서 나온 가르침을 멀리합니다. 3. 가장 흔한 경우인데요. 주님의 가르침을 더 관심있게 듣기를 포기하면서 그렇다고 굳이 신을 저버리거나 물질세계를 버리는 것도 아닌, 자기 눈에도 불완전하고, 남이 보기에도 어정쩡하게 불성실한, 이중생활을 택합니다. 저도 이 3가지를 다 경험을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조금 지나면 압니다. 이 세 가지 길 모두가 위험하다는 것을요. 자기를 왜곡시키거나, 자신에게 싫증을 내거나, 스스로 이중적이 되거나 결과가 나쁘기는 매 한 가지입니다. 여기서 이런 난감한 상황을 벗어나려면 이런 방법을 택해야 합니다. 더 큰 완성에 대한 갈망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며 당신이 주신 세상을 건전하게 바라보면서 주님의 초월하심을 기다리고, 본인도 발전과 노력을 기울이는, 이른바 하느님과 인간의 길을 상호 보완하는 길 을 찾아가야 하는데요. 그러기에 오늘 말씀이 참 솔직하게 읽혀집니다.

  복음의 세례자 요한은 두 번이나 나도 저 분을 알지 못하였다.” 라고 고백합니다. 어찌보면 창피하면서도 솔직한 고백입니다만, 선입견에 막혀 있지 않는 고백입니다. 독서에서도 우리가 어떻게 될 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 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아직 우린 그분의 전 면모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체험하지 못했음을 인정하면서 그분을 더 연구하면서 그 삶을 본받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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