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

2017. 1. 21. 오전 7:3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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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

  여러분은 무난하기를 바라십니까? 남들과 다르지 않고 별 탈 없이 지내는 무탈한 삶을 바라십니까? 이거 편하게 보입니다. 남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으니까요. 그러기도 싫고요. 헌데 우린 독특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린 천주교 신자이니까요.얼마 전 인구조사에서 천주교 신자가 인구대비 7.8%랍니다. 그럼 나머지 92%정도는 우리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인데요. 예전 신학생 때 예수회 관구장 신부님이 와서 교육을 하는데 던진 첫마디는 이것이었습니다. “여기 계신 학사님들은 생물학적으로 정상인이 아닙니다.” 사실 그렇지요. 남자가 어느 정도 나이가 차면 이성에 눈이 뜨이고, 후손도 보고 싶고, 자기가 원하는 바를 펼치고, 명예도 얻고 싶은데 이 삶이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니까요. 저는 불효자입니다. 제가 돈을 잘 법니까? 진급을 잘합니까? 손주를 안겨드립니까?

  오늘 복음이 딱 그 설정입니다. 예수님의 친척들이 찾아옵니다. 왜냐고요?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한 것이다.” 악마를 쫓아내고 몰려다니면서 무언가 하고 있으니 이상하게 보았겠지요. 오늘 기념일인 성녀 아녜스도 그렇게 가셨지요. 본인이 신자임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다가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린 어떤 면에서 보자면 독특한 사람들입니다. 안 믿는 이들이 볼 때 그렇게 평범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교우들 중에서도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특이하고 싶지 않은데.. 도드라지고 싶지 않은데.. 남의 이목도 신경이 쓰이는데..” 이런 생각이 오히려 우리의 정체성을 흔들게 만듭니다.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선택을 하지요. 그러면서 이 어중간함을 현실적인 현명한 선택이라고 여기면서 말이지요. 여러분 보고 당장 어떻게 하라고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아직 준비가 덜 된 분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독서를 통해 이런 것을 배웁니다. 염소와 황소의 피, 그리고 더러워진 사람들에게 뿌리는 암송아지의 재가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그 몸을 깨끗하게 한다면, 하물며 영원한 영을 통하여 흠 없는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죽음의 행실에서 얼마나 더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느님을 섬기게 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가르쳐주신 양심을 가지고 살아내는 삶이 우리가 해야할 몫이겠지요. 역사적으로 교회는 당시 국가가 하지 못한 것들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교육. 병원, 사회 복지 분야 등이었습니다. 국가는 백성들이 똑똑해지는 것을 그다지 원치않았지요. 병원도 많이 없었고요. 먹고 살기도 힘든데 복지가 왠말입니까?하지만 이젠 형편이 나아져 이것을 나라가 담당하고 있지만 여전히 남의 손이 필요하고 가난한 구석은 여전히 있습니다. 그 빈틈을 찾아서 해야하는 것이 순교의 영성을 살아야 하는 우리 신앙인의 몫이겠지요. 우린 남들과 달라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소명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남과 다를 때 본연의 색깔을 잃지 않고 투신해 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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