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8주일.

2017. 2. 25. 오후 1:3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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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8주일. 이사야 49,14-15; 1고린 4,1-5; 마태 6,24-34

  요사이 저는 제가 맡은 단체들과 한 달에 한 번씩, 회의 시작을 복음 나눔으로 합니다. 헌데 그냥 그날 복음만 가지고 하는 것은 아니구요. 다가올 주일의 1,2독서, 화답송, 알렐루야, 복음을 미리 읽고 묵상해 온 것을 나누는 시간을 가집니다. 우리가 말씀을 방금 읽었다고 뭔가 확~ 떠오르는 사람들은 아니니까요. 왜 이렇게 많은 양의 말씀을 읽고 기도를 시키냐?’ 고 물으신다면, 저는 이렇게 답변해 드립니다. 다른 날은 몰라도 주일 말씀에는 구약의 예언이 신약의 예수님을 통해 이뤄지고 있고요. 나아가 현재의 내가 그 말씀과 연결되고 이어지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때 내 인생관이 잡히기 때문입니다. 이 날도 어떤 분께서 나눔을 시작하셨습니다. 내용은 집안이 어렵고 힘들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부모가 아프고, 집안에 신경 쓸 일이 많고..’ 등이 계속 이어지다가 그런 이야기로 끝을 맺었습니다. 저는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그러면 오늘 이 말씀이 자매님께 어떻게 다가오신 것입니까?” 그 분은 이렇게 답변합니다. 현실과 맞지 않아요.. 동떨어진 이야기 같아요.” 순간 탄식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물론 이해는 갑니다. 현실이 너무 힘들기에, 그 힘든 것만 보여서, 주님의 말씀이 내 피부에 침투 되지 않는 현실을 한편으로 동감하지만, 그래도 우린 그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해야 미래가 있잖습니까? 하지만 그 분은 여전히 모르겠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도 성당에 나오면 편안해요...” 혹시 여러분도 그러십니까? 우리가 원하는 평화는 이런 수준이 아닌데요.

  저도 여러분처럼 평신도로 신앙생활을 시작했고, 지금은 교우들을 살펴보면서 이런 것을 발견됩니다. 우린 늘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들었지만, 실제로 나는 그 말씀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는다.’ 는 불편한 진실입니다. 서로가 말로 표현은 잘 안 하지만, 실제로 믿어도, 믿지 않는 신자로 살면서 불신과 불안은 이어집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진정 원하는 평화에 다다를 수 있을까요? 그저 죽어야만 그 평화를 만날 수 있을까요? 이런 문제를 만날 때마다 제가 그동안 무얼했나?’ 하는 괴로운 마음과 선배 신부님들의 애환이 느껴집니다. 여기서 저는 누굴 탓하고 싶은 마음도 없구요. 약한 믿음에 대한 질책도 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하고 있는 걱정과 고민의 차이는 봐야 하겠습니다. 걱정은 계속 불안함을 낳을 뿐이지만요. 고민은 더 나은 행보를 위한 응시의 자세를 가지게 해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개포동 본당 교우 여러분

가만히 응시하는 시간을 가져본 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우린 그 시간을 핸드폰, mp3, 뉴스, TV, 라디오 등으로 메꿨지만, 그것이 잠시 위안을 됐을지언정. 실제 나 자신은 돌보게 해주지 못했습니다. 화답송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내 영혼아 하느님을 고요히 기다려라 잠시 머무는 시간 속에서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찾을 때, 나는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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