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4주간 금요일. 히브 13,1-8; 마르6,14-29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이런 질문을 던져보게 됩니다. ‘고학력자는 늘어만 가는데, 실제로 그들에게서 왜 깊은 지성을 느낄 수는 없을까?’ 하는 물음입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정보는 넘쳐흐르고, 그것이 너무 많아서인지 젊은 친구들에게서 볼 수 있는 현상은 이른바 ‘결정 장애자’ 가 양산됩니다. 뭘 먹어야 할지,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등등도 정하기 힘들어 합니다. 여기에 메이지 대학 사이토 타카시 교수는 이런 말을 합니다. ‘지식이 있어도 적절히 판단하고 선택하지 못하면, 지성이 결여되었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정보가 넘쳐나는 현재, 우리는 늘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방향에 대해 질문을 받습니다. 잘못 선택하면 자신의 단기이익만 쫓는 결과를 낳고 말지요’ ...
오늘 복음에 나오는 헤로데 왕도 그랬습니다. 자기 백성에 대한 통치권을 가지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대합니다. 당연히 많은 부분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자리고요. 옆에는 많은 참모진이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는 결국 죄 없는 세례자 요한을 죽이는데 찬동하고 맙니다. 그렇다고 그가 판단력이 없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 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충분히 자질이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왜 그랬을까요? 이 대답은 앞서 인용한 예화에 누군가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지성을 어떻게 하면 키울 수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보지요. 1단계는요. 새로운 책을 읽고, 신문을 읽고, 고전을 번갈아 읽는 것입니다. 현재 나오는 새로운 책은 이슈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문은 일상에 대한 생각을 조리있게 서술하고 있고요. 고전책은 그동안의 인간사를 꿰뚫고 있습니다. 2단계는 지성의 본질은 지식이 아닌, 지혜에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식은 책으로 배울 수 있지만, 지혜는 경험에서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를 얻으려면 ‘답 없는 물음’ 을 계속 던져야 합니다. 쉽게 결론내리지 않고 계속 질문해야 합니다. 사실 사람은, 얼른 결론을 내리고 싶어합니다. 그런 과정이 힘들고 지루하고 어려우니까요. 하지만 그 과정을 가벼이 여기면 섣부른 결과를 낳기때문에 그야말로 숙고(熟考)하는 자세가 필요한데요.....
오늘 독서에는 형제애, 혼인문제, 돈 욕심 등을 다룹니다. 역사적으로 계속 되어온 질문입니다. 이것들이 빨리 결정 내린다고 될 것들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헤로데가 어떻게 했습니까?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남의 눈을 두려워했지요. 결국 단기이익에 손을 들어줍니다. 결정해야 할 사람들이 쉽게 결정을 포기하면 어떻게 됩니까?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을 포기하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많이 봤습니까? 주님의 숨결을 느끼고 사는 이라면 우리의 결정은 어디로 흘러야 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