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7주간 화요일. 집회 2,1-11; 마르 9,30-37
예전 원주에서 지학순 주교님과 민주화 운동을 하고 시인 김지하의 스승이며, 서예가이기도 한, 장일순 선생이란 분이 있었습니다. 그 분의 일화입니다. 이 분은 학생들에게 노자 사상을 말하면서 ‘낮아져라, 기어라’ 하며 가르침을 폈답니다. 그러던 차에 식사를 하고, 반주(飯酒)를 걸치며 거나하게 취하고 길을 가던 중, 술힘을 빌려 제자 하나가 장일순 선생에게 평소에 품은 질문 하나를 던집니다. “선생님” “그래 왜?” “선생님은 남들 보고는 기어라. 기어라 하시면서, 정작 선생님 자신은 기는 법이 없습니까?” 돌발상황이 발생되었습니다. 게다가 모두들 장일순이 어떻게 나올지 구미가 당긴다는 얼굴로 이 상황을 바라보았답니다. 여기에 장일순은 바로 무릎을 꿇고 납작 엎드려 절을 했답니다. 포장도 안 된 흙길에서 말이지요. 질문을 한 사람이나 일행 모두 갑작스런 태도에 아무 말도 못했다는데요. 사실 실제로 이렇게 낮아지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지요.
저도 요사이 그런 심정이 어떤 것인지 맛보게 되었습니다. 어제는 미사를 하려고 하는 데생미사, 연미사 지향이 제대에 올라오지 않은 사건이 벌어졌구요. 제가 피정 가고 없던 차에, 청년 단체 여러 명이, 자기들보다 10살이나 어린 교사회에 찾아가 멱살을 잡고 물건을 던지며 행패를 부렸답니다. 모두 같이 쓰는 본당 비품 물건 하나가 없어져서 화가 나서 그랬다면서요. 이런 사태가 발생되면 보통 사람들이 하는 제일 쉬운 방법은 이것이지요. ‘잘못한 사람 하나 잡아서 혼내고,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을 덮어씌우며 책임을 지게끔 만들면 됩니다.’ 하지만 우린 그런 사람들이 아니지요. 그리고 본당의 교우들을 이끄는 사람이라는, 저 같은 사람은 더더욱 그래서는 안되지요. 그래서 사건을 벌인 당사자와, 분과를 담당하는 분과장님, 그리고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모든 사태의 책임을 져야하는 제가 찾아가, 그들에게 머리를 숙이며 사과를 했습니다. 물론 인간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지요. 저도 사람이기에 자존심이 생각나고요. 게다가 그들은 나이차이도 25살이나 어린 친구들이니까요. 하지만 그랬습니다. 그리고 그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 그래야만 했고요.
오늘 주님은 복음에서 자신이 당할 수난을 예고하시면서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하시면서 앞에 서는 이가 맞이해야 할 책임감과 직무의 성격을 보여주십니다. 독서에서 나오지요. “너에게 닥친 것은 무엇이나 받아들이고, 처지가 바뀌어 비천해지더라도 참고 견뎌라.”
대다수 사람들이 남들 앞에 나서서 뭔가를 해보고 싶겠지만, 현실은 그럴만한 그릇도 못되는 이들이 욕심만 냅니다. 이런 일은 저에게도 여러분에게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 낮아질 때, 결국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 지 알구요, 결국 진정한 큰 사람이 되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하는 마음과 진실한 행동으로 낮아져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