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2주일. 창세 12,1-4; 2디모 1,8-10; 마태 17,1-9
나에게 던져지는 도전에 대해 여러분은 어떤 반응을 보이십니까? 하느님은 아브람에게 이런 제안을 하십니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그럼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갑작스런 제안을 받아 아브람처럼 당장에 떠나시겠습니까?..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힘 중에 하나가 ‘질문’입니다. 질문은, 사람으로 하여금 답을 찾아 헤매는 여정의 시간을 가지게 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하게 되지요. 우리 한국교회가 지금까지 커왔던 배경도 이러한 ‘떠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갑작스런 제안을 받아들인 분들의 도움으로 살았습니다. 바로 수도회 선교사분들이지요.
2013년도에 여러 신부님들과 독일 베네딕토회 소속인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으로 피정을 갔었습니다. 예정상 조용하게 있을 줄만 알았지만 저희는 계획에 없던 장례미사에 참례해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돌아가신 신부님이 우리 한국에 1965년에 오셔서, 50여년간 분도출판사에 계셨던, 독일 이름은 하인리히 세바스티안 로틀러. 한국 이름은 임인덕 신부님이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잘 아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꽃들에게 희망을’ 같은 책을 펴내셨지요. 저희도 이 분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몰랐구요. 독일 분도회 총장신부님도 한국인인 저희에게 이런 느낌을 표현하였습니다. ‘그 분이 한국에 가신 지, 50년이 되었다지만 사실 저희도 이 분이 어떤 분인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출판과 시청각 영상물을 많이 제작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라고 짧게 답할 뿐이었습니다. 순간 이런 문구가 떠올랐습니다.
‘선교수도원의 사명으로 가족 같은 수사들을 다른 나라로 보내지만..
이제는 누구도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린 계속 보내야 한다.’
귀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름 계획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잘 모르는 나라에 파견되어, 이제는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신세가 된 그분들이 계셨기에, 우리 교회가 이나마 살 수 있게 되었는데요. 이것을 비참하다고만 말할 수 있을까요?
제 직책이 이런지라, 가끔 신부님이나 수녀님을 꿈꾸는 이들과 면담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요즘 따라 달라진 점도 발견합니다. 예전 몇 년간의 상황은 이랬습니다. 부르심을 받은 이가 나름 준비하면서 마음도 다지고, 주변도 정리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기도도 부탁합니다만.. 요즘은 좀 달라보입니다. 일단 내가 지원한다고 꼭 선발되어 뽑힌다는 보장과 확신이 없어서인지 자신의 상황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가까운 누구에게도 잘 알리지 않습니다. 심지어 가족도 잘 모릅니다. 알려지는 것을 꺼리니까, 당연히 기도를 부탁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여러 군데 찾아는 다닙니다. 하지만 충분히 부딪혀 보질 않기에, 얻는 정보도 부족하고요. 가만히 머리만 굴리며 고민만 하다가, 긴 시간이 지난 후에 ‘전 안되겠어요’ 라는 대답으로 끝을 맺는 이들을 봅니다. 그야말로 자기 생각의 범주에 갇힌 분들을 많이 봅니다. 물론 이들의 선택과 판단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도 많이 했구요. 나름 생각도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두려워하는 정도가 예전보다는 커 보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예수님의 변모사건이 나옵니다.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 물론 좋아 보이지요. 그럴 듯해 보입니다. 이른바 선망의 대상이고요. 여기에 나도 동참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말하지요.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 모습을 갖추려면 내가 해야 할 것들이 있지요. 하지만 그것이 당장에 어렵고 힘들게 보이기에, 많은 이들이 그것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물론 안 가본 길은 두렵습니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자에게는 뭔지 모를 위험이 도사립니다. 그래서 모두들 쉬운 길로 가려고 하지요.
저에게도 신부, 사제라는 길은 험난한 길입니다. 다음 번 임지가 어디일지 모르구요. 새로운 장소에서 좋은 여건의, 좋은 사람만 만나리라는 보장도 없구요. 상황이 달라지면 갑자기 짐 싸서 다른 데로 가거나, 또는 성직의 길을 더 이상 못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10여년을 여기서 버틸 수 있었던 배경이 뭐였는가?’ 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는데요. 역시나 저의 노력, 저의 의지, 저의 계획이 아니라, 그 안에는 ‘하느님의 힘’ 이 항상 숨쉬고 있었습니다. 모르기에 불안한 것이 사실이었지만, ‘앞길이 뿌옇게 보이는 주님의 사명에, 일단 동참해보는 것이 결국 나를 살렸고, 여기 교우들도 살리게 된다.’ 라는 깨달음이 저를 움직이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개포동 본당 교우 여러분.
이제 나라나, 개인이나, 경제나 모든 상황이 달라져만 갑니다. 이제껏 가보지 않는 길을 가야 합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그 안에서 목소리를 잘 들으며 가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