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1주 수요일. 요나 3,1-10; 루카 11,29-32
우리가 가정을 돌보고 일을 하고, 심지어 교회에서 활동을 하는 이유는 단순하게 ‘해야 하니까’ 하는 수준의 것도 있습니다만, 거기서 얻는 좋은 것, 고마운 것, 혜택들이 있기 때문일 때가 많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재롱도 보고싶고, 일을 하며 급여도 받지만, 뭔가 착착 진행되어 가는 맛이 보고 싶고요. 신앙에서도 마음의 평안함이나 일 터에서 만날 수 없는 사랑 어리고, 감동어린 맛이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맛에만 머물고 그 맛에만 도취되어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더 큰 맛, 근원적인 맛에 다가가지 못하거나 꺼릴 수도 있는데요.
오늘 독서에서 요나는 니네베 사람들에게 이렇게 얘기하지요. “아무 것도 맛보지 마라” 맛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가혹하다 여겨질 수 있습니다만 이런 경우도 있지요. 속이 아프기 때문인지 음식물을 먹으면 소화가 되지 않고 계속 게워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약도 필요합니다만, 이를 치료하기 위해 굶는 것이 필요하지요. 속을 비워야 문제가 생긴 부분이 치료되는 것을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더 큰 맛, 더 본질적인 맛을 원한다면 평소의 것에서 더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복음에도 말합니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 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니네베에 가기 전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거기 가기 싫어서 도망치다가 고래 뱃속에서 3일간 깜깜하게 지냈잖습니까? 이른바 ‘죽음의 체험’ 이지요. 모든 것이 끊기고, 절단되고, 허망하게 보이는 시간과 체험이 오히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 지를 알려주는 표징이 되었습니다. 이런 시간이 여러분의 계획에서는 원하지 않는 시간이 될는지 모르지만, 이런 시간이 오히려 나의 인생을 더 간결하게 만들어주고, 깔끔하게 만들고, 견고하고 탄탄한 삶으로 변화시켜 줄 것입니다. 이런 사순 시기를 잘 맞이하신다면 진정한 맛에 가까이 다가가실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