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3주간 수요일.

2017. 3. 21. 오후 10: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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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3주간 수요일. 신명 4,1-9; 마태 5,17-19

  그동안 부담스럽게 여긴 탓인지 우린 규칙, 법에 대해서 말하기를 꺼려왔습니다. 요사이 정국사태로 인해 법의 소중함을 다시금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교회만큼은 너무 빡빡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교인들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교회야 말로 참으로 보수적인 곳이지요. 생명에 대해서, 환경에 대해서, 윤리에 대해서, 인권에 대해서 등. 참으로 많은 가르침이 있습니다. 이처럼 교회가 2천년간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도, 당신이 일러주신 계명과 가르침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어왔기 때문인데요. 그렇기에 인간적으로 거부하고 싶어도, 내 마음대로 믿고, 내 멋대로 하고 싶어도, 실은 불가능한 곳이 어쩌면 교회라 하겠습니다. 조금 실망스럽게 들리실지 몰라도요.

  오늘 말씀이 그러합니다. 독서에서는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실천하라고 가르쳐주는 규정과 법규들을 잘 들어라. 그래야 너희가 살 수 있다.” 하시고요. 복음에도 예수님에 대해 오해하던 사람들을 향해 일침을 날리십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주님의 구원계획은 그래왔습니다. ‘사람의 구원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 원칙에 근거하여 시대에 맞게 여러 방법을 적용시켜 왔습니다. 불교경전인 법구경에도 이런 말이 있지요. ‘항상 이 몸의 정체를 생각하여 그 덧없음을 잘 알고, 해서는 안 될 일을 하지 않으며, 해야 할 일만을 꾸준히 하고, 생각이 깊고 조심성 있는 사람에게서, 번뇌는 점점 사라져 간다.’ 할 것과 말아야 할 것의 구분 속에서, 참된 평화가 온다는 것을 가르쳐주는데요.

  사실 이러한 의무나 반복적인 행동을 강요하는 것이 어떤 분에게는 힘들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자유가 억압되는 느낌이라던가, 본능을 막아서는 것처럼 여겨져서요. 하지만 한 가지가 숙달되기 위해서 참으로 많은 반복훈련이 필요했음을, 우린 다시금 헤아릴 필요가 있습니다. 너무 당연한 것조차, 의식하지 못한 연습이 필요했었습니다. 밥먹고, 숨쉬는 것부터 말이지요. 주님이 말씀하신 사랑과 정의도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불편하게 여겨지고, 손해보는 것처럼 보여도, 오히려 그래야 서로를 살릴 수 있는 정신이 우리에게서 나와야 함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주님이 바라시는 일이고, 결국 우리도 원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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