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4주간 수요일
요사이 많은 분들이 고해성사를 잘 보고 계십니다. 그 안에서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본인의 과오를 잘 살펴 말씀하시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움도 밀려듭니다. 쉽게 말씀드려서 ‘주님의 가르침이 교회를 통해 나온다' 라는 a라는 답을 알려드렸건만 본인은 그것을 a' 나 b로 알아듣고 있다는 점’ 입니다. 이에 저는 고민이 됩니다. 이것이 과연 어려운 일이기만 한 것일까? 그래서 열심히 활동한다는 분께 물어보니 또 이런 답변을 듣습니다. ‘이론과 현실의 갭(gap)은 어쩔 수 없다’ 저는 또다시 고민이 들어갑니다. 과연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것들이 ‘이상적’ 인 것만 한 것일까요? 저는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됩니다. 왜냐하면 만약 ‘이상적’ 이기만 하다면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오실 필요가 없지요. 일부러 사람과 같이 유혹을 받고 수난을 당하실 필요가 없지요. 그냥 말로만 쓰윽~ 하면 될 것을 뭐하러 고통을 당하십니까? 그분이 인간 코스프레라도 하려고 그러셨겠습니까?
오늘 복음은 하느님과 예수님의 연관성을 알려주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 요한 복음 10장 30절에는 기어이 이런 말씀까지 나옵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이 말씀은 결국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주님의 일을 제대로 하고 싶다면 그분의 섭리에 비추어 행동을 하면.. 결국 우리도 예수님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뜻’ 인데요.
이론과 현실의 갭이라는 보통 사회에서나 말할 법한 통념이, 어느사이엔가 우릴 이렇게 만들어놓습니다. 당연하다는 듯이 우리 안에 들어와 더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불가능하다고 여기고 있는데요. 스스로 어쩔 수 없다고 금을 그어놓고 포기해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장애물은.. 오히려 내가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닙니까? 우린 내가 세운 장벽부터 허물어야 하는데요.
하느님의 사랑은 독서 말씀을 통해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당신께서 우리를 잊지 않으시듯, 우리도 배운 가르침을 잊지 않고 행한다면 당신의 가르침이 영원할 뿐 아니라 이미 현실적으로 가능할 수 있음을 체험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