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미사
오늘 우리는 선 가브리엘 형제님의 장례미사에 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가브리엘 형제님을 3번째 만납니다. 한 번은 댁에서, 두 번째는 병원에서, 그리고 오늘 이렇게 말이지요. 잠시 강론을 준비한답시고 앉아있으니 이런 것이 떠오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여러 가지를 해보지만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무엇을 해야만 할까?’를요.
다들 청운(靑雲)의 꿈이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를 잘하고, 그것을 펼치고 싶고, 두각을 드러내고 싶고, 그리고 정점(頂點)에 서길 원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됩니다. 내 맘대로 안되고, 잔재미는 사라져가고, 홀로 있는 시간은 늘어가고, 기력은 떨어지고, 허락된 시간은 짧아져 간다는 것을요. 그렇게 지나가는 시간이건만, 이 흐름에도 근본적인 원칙은 있었습니다. 그 원칙이란, ‘왔다가 사라지는 삶’ 이라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나는 예외이고 싶고, 우리 가족만큼은 그렇게 되고 싶지 않겠지만, 안타깝게도 이 대세의 흐름은 거스를 수가 없습니다.
긴 투병의 세월동안, 가브리엘 형제님은 이러한 것들을 이미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가쁜 숨을 몰아 내쉬며 아무도 모르게 마음을 잡고, 준비해오신 것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만나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전례력으로 부활주간을 보내면서 한편으로는 다행이요, 안도감이 드는 것은, 이미 주님께서는 우리의 이러한 삶을 아시고 약속을 통해 보여주신 ‘영원한 삶’ 이 어떤 것인지를 미리 맛보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삶이 슬픔으로 끝나지만은 않는 희망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떠나고 계신 가브리엘 형제님도, 그리고 여기 있는 우리도 그렇게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만날 것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항상 이렇게 기다림의 시간을 살아가야 합니다. 비록 우리의 마음은 아프지만 형제님께서는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을 끝내고 계십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곧 뵙겠습니다.
주님 선 가브리엘 형제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