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간 화요일
많은 분들이 가족과 같은 가까운 사람과 멀어진 문제로 힘들어 하십니다. 사연을 듣자면 공감이 가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아닌가? 싶은데요. 어린 시절에는 서로 없는 와중에서도 형제끼리 뭔가를 나누려고 했다면, 이제는 현재 살고있는 식구만 챙긴다거나 혹은 식구마저도 나 자신의 안위를 위해 등을 지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데요.
오늘 복음이 그런 사건을 보여줍니다. 3년 가량 당신을 따랐던 제자 유다가 당신을 배반하러 나갑니다. 당신도 이를 아시기에 “네가 하려는 일을 하여라” 하십니다. 유다 입장에서는 실망감이 들었겠지요. 3번의 수난예고를 통해 ‘내가 죽으러 갈 것이다’ 하는 말을 듣고있자니 그동안 철썩같이 믿으며 살았던 내 인생의 보장이 보이지 않으니 오히려 ‘예수님이 우리를 먼저 버리시는 것 아닙니까?’ 하며 반박도 할 만합니다. 기대감의 박탈, 예상치의 몰락, 헛고생만 한 것 같은 느낌.. 이런 것들이 뒤엉켜 그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지요. 어쩌면 ‘내 속을 긁어대는 남편이나 자식이 없어져 버렸으면’ 하는 여러분 가운데 있는 마음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일단 내 기대치가 더 이상 침몰하지 않기를 바라면서요.
여기서 우린 새로운 사랑을 세우기 위해 예전의 가치관을 무너뜨리고 재건하시는 당신의 의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미 단체장을 해보신 분들은 제 말에 공감이 가실 것입니다. ‘내가 임기를 맡고있는 동안에는 이 단체가 허물어지거나 변경되거나 잘못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이지요. 그래서 예전의 방법만을 고수하시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방식이 현재와 맞지않는 악수(惡手)만을 거듭하는 행동이라고 말씀드린다면 무어라 하시겠습니까?
오늘 독서는 이사야 예언서의 ‘주님의 종’ 둘째부분이었습니다. 어제가 첫째부분이었고요. 내일은 셋째부분입니다. 오늘 내용은 이랬습니다. “이스라엘의 생존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이전의 계획이 이스라엘 사람만을 위한 구원이었다면, 앞으로는 세상 민족 모두의 구원까지 확대되는 계획인데요. 더 크고 넓은 차원의 사랑이지요. 헌데 우리의 사랑의 상태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나.. 현재 내 식구에만 머물고, 같은 부모 아래서 자란 형제들이 어디서 뭘 하는 지, 관심도 왕래도 없는 것은 아닙니까? 예수님을 통해 내가 품은 사랑도 커 나가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