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교회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예전 사람들이 ‘왜 하느님을 믿었던가?’ 라는 답을 찾을 수 있고요. 우리도 그것을 보면서 자신의 믿음의 바탕을 마련할 수 있는데요.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자신의 삶을 살아간, 현실의 사람들이었기에 오늘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을 맞이하면서 여러분도 답을 찾아보셨으면 합니다.
유스티노 성인은 유대인이었지만 그리스계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지금의 미국처럼 힘은 로마가 강했고요. 문화적으로는 그리스가 뛰어났습니다. 하지만 그 뛰어난 문화를 가지고도 대답해주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몇 가지만 나열하자면 이런 문제들입니다. ① 과연 신은 있는가? ② 영혼은 불사불멸하는가? ③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④ 자연재해가 생기거나 전쟁에서 지는 문제는 과연 신의 섭리인가?하는 지금도 철학에서 대답해주지 못하는 유효한 답을 그리스도교는 해주고 있었기에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교로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유스티노도 믿음의 길로 들어가는데요.
이러한 점을 잘 알고 있던 바오로는 의원들 앞으로 불려가 확고한 선언을 합니다. “나는 죽은 이들이 부활하리라는 희망 때문에 재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은 다분히 의도된 것으로 논란과 분쟁이 야기될 것을 알고, 작심하고 발언한 것입니다. 단순하게 신앙을 표현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부활을 인정하는 바리사이와 부활을 거부하는 사두가이들의 차이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갈등어린 분쟁을 통해 그는 거기서 빠져나와 다른 나라에 가서 복음을 선포합니다. 이에 주님도 힘을 불어넣어주시며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너는 예루살렘에서 나를 위하여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한다.” 복음의 예수님도 기도하십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 현재, 서로가 갈라져 있는데 하나가 되려면 당장에 무엇이 수반될까요? 분란과 갈등과 소란을 거쳐야 참다운 평화를 만날 수 있는데요.
가만히 조용한 가운데에서 평화는 자연스레 오기 힘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라는 큰 희생을 통해 구원이 올 수 있었던 것처럼, 내 안의 갈증을 당신을 통하여 채우고 변화될 때 나에게도 참다운 구원과 평화가 깃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