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대축일
많은 분들이 성부-하느님, 성자-예수님에 대해서는 친근하게 알아들으면서도 성령이신 ‘그 분의 활동’ 에 대해서는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으십니다. 물론 이론적으로 교리적인 내용을 이 자리에서 읊을 수 있습니다. 이건 이렇고, 저건 어떻다고요. 안 보이는 그분을 쉽게 설명해보겠다고 그동안 그렇게 해왔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다보니 놓치는 것도 보입니다. 당신의 자유로운 활동과 섭리의 개입을 단지 이론적인 측면으로, 머리로만 받아들이려는 한계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내 선입견, 내 가치관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이해하려 들지 않고, 일단 다르면 거부감부터 들면서 무조건 어려워만 하시는데요.
이제 좀 다르게 접근해보겠습니다. 일단 내 상태부터 바라보겠습니다. 이런 질문부터 드려보지요. ‘갑자기 예상치 못한 문제에 맞닥뜨려졌을 때, 과연 나는 그동안 어떻게 해왔었는가?’ 라고요. 우유부단 했습니까? 일단 피하고 봤습니까? 아니면 무조건 뚫고 들어갔습니까? 아니면 가만히 있었습니까? 그 후에 어떤 결론에 다다랐습니까? 과연 잘했던 판단이었습니까?아니면 후회되십니까? 그동안 교리에서는 성령을 표현하길 숨, 얼, 바람 등으로 칭해왔습니다. 그렇다면 바람을 내 맘대로 불게 할 수 있나요? 숨을 무조건 참을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공기의 바뀜은 내 영역이 아니고요. 나는 살고자 하는 욕구가 있기에 숨을 뱉고 들이마셔야 합니다. 게다가 당신이 주신 주위를 살펴보겠습니다. 세상의 창조물인 사람과 동,식물, 그리고 여러 가지 물건과 시스템들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내 맘에 들지 않더라도 다양하고, 달라야만 가치가 있고, 똑같기만 하다면 서로에게 의미도 없고, 도움을 줄 수도 없습니다. 여러 다양함이 모여야 거기서 세상이 참답게 돌아갈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이런 상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해하고 싶지 않더라도 이것만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이곳은 내가 만든 세상이 아니기에 나도 언젠가 떠나야만 한다. 잠시 스쳐갈 뿐이다. 그런 와중에 당신은 나를 태어나게 하셨고, 많은 경험과 체험을 시켜주셨으며, 달갑지 않았어도 거기서 뭔가를 배우고 느끼게 해주신다.’ 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을 잘 살아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꽃향기를 맡으려면, 풍경을 바라보려면, 잠시 멈춰 서서 느낄만한 시간과 마음의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열리는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럴 때 잘 음미할 수 있지요. 이것이 되려면 평소 잘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할텐데요. 마음의 공간을 여는 연습 속에서 당신이 주신 선물을 느껴봐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