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0주간 목요일
교회를 통해 우리가 들어왔던 말들은 다행스럽게도 그리 난해하거나 어려운 말은 아닙니다. 오늘 말씀처럼 누구나 들으면 이해할 수 있고 공감이 가능합니다. “화해하고, 타협하고, 자기의 화를 무턱대고 내뱉지말고 조절하는 것” 이지요. 게다가 이런 말이 단순한 개인적인 사견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근거가 있습니다. 바오로가 말한 “우리가 선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기에 우리의 입이, 우리의 목소리로 부르짖는것이 단지 전달자 역할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신부의 개인적인 의견을 이 강론대에서 말하다가는 당장 퇴출되어도 할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자리는, 이 위치는, 그런 곳이 아니지요. 그러기에 지금 하고 있는 강론도 주님의 말씀보다 더 돋보이거나 두드러져서는 안됩니다. 이건 꼭 저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이미 교우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사람은 천주교인’ 이라는 안 보이는 낙인이 찍혀있습니다. 그러기에 비신자들이나 우리 이웃들에게 이렇게 말하지요. “믿는다는 사람이 왜 그래?” 사실 듣기에 불편한 말입니다. 하지만 그 말에는 이런 것이 깔려있지요. 비록 ‘자신들이 그렇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우리는 뭔가 남들과 다르길 바라는 마음’ 을 말입니다. 물론 이 바람을 알긴 하지만 우리에게도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욕심과 고집, 자존심 지키기 등으로 틀어졌던 마음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돌려세운다면 우린 화답송의 구절처럼 “자애와 진실이 서로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리라” 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됩니다. 뭔가 현실 속에서 자리가 잡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차린다는 것이지요.
오늘 말씀은 어려운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실천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배워 알고 있던 것을 현실로 옮겨내는 연습을 해봐야 하겠습니다. 당장에, 한 번에는 되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꾸준하게 해주십사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빌면서 임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느님 나라가 현실에서부터 가능하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