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4주간 목요일.

2017. 7. 14. 오전 10:5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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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4주간 목요일. 창세 44,18-45,-5; 마태 10,7-15

  우리가 그렇고요. 대다수 사람들이 그렇듯이 남들에게서 상처를 받고 싶어하지 않지요. 그래서 상처받을 낌새가 느껴지면 그 자리를 피하거나 또는 어쩔 수 없이 받았을 때, 그 고통을 치유해내지 못하고 그냥 끌어안고 있거나, 끙끙 앓거나, 또는 다른 방식으로 분풀이를 하는데요. 가족에 대한 잔소리, 알콜, (), 쇼핑 등으로 그것과 전혀 상관없는 방식으로 풀곤 합니다.

  자~ 여기서 오늘 들은 말씀을 통해 배울 점이 있다면 뭘까요? 상처입은 사람이 그 상처를 어떻게 극복하고, 매번 수모를 당하지만 별 일 없다는 듯이 떨어내고 새출발을 하는 모습이 나오는데요. 독서에서 요셉은 자기 친형들에 의해 이집트로 팔아넘겼지만 그것에 대해 앙심이 없다는 듯이 이렇게 이야기하지요. 내가 형님들의 아우 요셉입니다. 형님들이 이집트로 팔아넘긴 그 아우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저를 이곳으로 팔아넘겼다고 해서 괴로워하지도, 자신에게 화를 내지도 마십시오. 우리 목숨을 살리시려고 하느님께서는 나를 여러분보다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 솔직히 처음부터 요셉이 형제들을 살리기 위해 이집트로 보냈다는 사실을 알았을 리는 없지요. 그라고 어릴 때 받은 상처가 왜 없겠습니까? 원망이 가득할 수 있지요, 형들의 시기와 질투로 시작되었지만 그것을 이기고 재상의 자리에까지 오르는데요. 복음의 사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들을 항상 좋아해주진 않지요. 하지만 그런 환경속에서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던 배경은 무얼까요?

  답을 찾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도 그들과 비슷한 환경에 놓이곤 하는데 이것을 어떻게 이겨나가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내가 예전에 받은 상처를 지금은 어떻게 바라봐주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미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그 때는 나도 어렸고, 그들도 어렸고요. 그리고 그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행했었고요. 나 자신을 잘 돌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합리화 하거나 핑계대기 바쁘지요. 당시로서는 그게 최선인줄 알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난 뒤 깨닫곤 하지요. 난 내 상처에 가로막혀있으면서 상처만 보고 있었구나. 그들도 잘 모르면서 행했었구나..’ 그러기에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가 보입니다. 나 자신이 잘 채워져 있어야만 가족, 친구들을 사랑할 수 있음을요. 그것이 안되어 있으면 내 안에서 짜증섞인 것이 튀어나옵니다. 그래서 우린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나를 응시하고, 무엇 때문에 어떤 이유로 치유를 못하고 꽉 막히고 얹힌 느낌이 드는 지, 왜 안 좋은 것들이 쏟아져 나오는지를요. 그럴 때 요셉과 사도들이 어떻게 본인들을 치유해 왔는지가 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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