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6주일.

2017. 7. 22. 오후 2:2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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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6주일. 지혜 12,13-19; 로마 8,26-27 마태 13,24-30

  여기 계신 분들이 하셔야 할 것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실생활을 통해 현실화 시켜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방금처럼 말씀을 듣긴 하였지만 이것이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는 지, 어떤 쓸모가 있는 지, 이것을 통해 무엇을 알아듣고 체험해야 할 지를 모른다면 지금까지 들은 말씀은 그야말로 헛 것이 되고 마는데요.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이 들은 말씀이 그야말로 내 생활에 도움이 되고, 적용이 되는 방법에 대해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방금 여러분이 들으신 복음 말씀은 밀과 가라지의 비유입니다. 이 둘이 현재 같은 땅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조심할 사항이 있습니다. 조심할 사항이란 우리가 내리고 있는 판단이 생각보다 섣부르게 빠르다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결정은 쉬운 방향으로 흐르지요. 종들이 말하지요.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우리 경우라면 이러할 것입니다. 제게 싫어하고 불편한 사람이 있는데 안 보고 살거나 의절하면 되지 않을까요?’ 만약 집주인이 말리지 않았다면 뽑아낸 후 당장에는 기뻐할 것입니다. 하지만 주인은 그런 어설프고 섣부른 판단에 대해 주의어린 당부의 말을 합니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에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당장에는 없애버리는 것이 좋아보일지 모르지만, 그런 자세가 좋은 방향으로 변화될 수 있는 여지의 과정을 지켜봐주지 못하는 판단이라면 여기에 사도적 성찰의 자세가 필요한데요. 이것을 해야 하는 이유는 나에게 다가온 사건이 비록 부정적으로 여겨질 지라도 그리스도의 시각으로 변환시켜 부정적인 결말로 끝을 맺는 것이 아니라 나쁜 것을 통해서도 좋은 것을 끌어내셨던 주님의 모습처럼 긍정적인 변화를 맞이하기 위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사도적 성찰 자세의 첫째로는 관찰의 자세입니다. 내가 겪은 상황을 바둑에서 복기하듯이 다시금 잘 들여다보면서 상황을 자세하게 들여다봅니다. 그 사건에 영향을 준 원인들, 즉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인 여러 원인을 들여다보고요. 나의 감정이나, 호기심, 기호도가 섞이지 않은 현실적인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그 어떤 감정이입이 들어가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린 사건의 근본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둘째로는 ‘판단’입니다. 즉 관상의 식별의 단계로 들어갑니다. 관찰로 들여다 본 것을 통해 내가 느끼고 체험한 사건을 내가 읽어왔던 성경의 말씀에 대입시켜봅니다. , 하느님의 계획이 어떻게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지를 식별하는 단계입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를 예로 든다면, 밀밭에 가라지가 섞여 있습니다. 뭔가 좋지 않은 무언가가 섞이게 되었거나, 나의 계획과 당장에 차질이 빚어지듯이 돌아가고 있다면, 이럴 때 이런 생각을 하지요. ‘나는 나의 계획대로 밀고갈 것인가? 아니면 일단 놔두면서 부정적인 요인들이 변화되어 가는 것을 지켜볼 것인가? 이런 판단의 시간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인 현대 세계의 사목헌장 21에도 담긴 내용인데요. 세상에 신이 없다는 무신론에 관한 치유하기 위해 교회가 할 일은 하느님 아버지와 하느님의 아들을 마치 눈에 보이듯이 성령의 인도로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쇄신하고 정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보다 살아있는 성숙한 신앙의 증거다.” 내가 겪은 사건이 주님의 시선을 통해 쇄신하고 정화하면서 과연 이것이 교회의 살아있는 성령의 이끄심과 잘 부합되는 지 점검합니다. 그러면서 복음의 집주인이 하였듯이 기다리면서 판단하는 자세가 어떤 마음이었는 지 공감해 갑니다.

  셋째로 실천하는 회개의 과정 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아들은 것이 우리의 목표와는 당장에 부합되지 않더라도 우리가 그 분의 일을 하겠다는 결심을 통해 주님께 가려는 갈망을 가집니다. 이렇게 해본다면 성령께서 임하시는 교회가 어떤 기준을 통해 나가야 할 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내 인생의 방향도 나오겠지요.

사실 우리의 매일의 연속된 삶은 관찰하고 판단하고 실천하는 삶입니다. 그러면서 뭔가 결정해가지요. 그렇다면 좋은 결정을 내리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단순하게 합의만 잘하면 될까요? 다수결 방식처럼 의견이 많으면 될까요? 만약 그 다수의 숫자가 그 사안에 대해 충분히 숙고하고 나온 다수가 아니라, 그저 자신의 편의의 의해 내려진 다수라면 과연 좋은 결정이라 할 수 있을까요? 이제 우리가 만나야 할 것은 단순한 소통과 합의를 넘어선 그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예전부터 해왔던 성찰의 과정인 관찰-판단-실천을 통해 좋은 결론의 도출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제 결말입니다. 오늘 1독서의 지혜서는 하느님은 만물을 돌보시는 정의의 힘으로, 세상을 관통하고 통솔하는 분으로 적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을 가진 분의 힘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요? 이제 우리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만족시키려 하기보다 하느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더 나은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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