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4주간 수요일. 창세 41,55-42,24; 마태 10,1-7
예전 제가 중학생일 무렵, 신부님과 어느 신자분이 대화하는 것을 우연찮케 듣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 신부님이 그러시더군요. ‘그 사람들이 우리 본당 신자입니까?’ 처음에는 ‘신부님이.. 우리 본당 신자와 아닌 사람과 차이를 두려고 저러시는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신학교에서 ‘사목’ 에 관한 수업을 들으며 이해가 되었습니다. ‘사목자’는 먼저 자신에게 맡겨진 신자들부터 챙겨야 하는 사람임을요. 우리들 중에 이런 모습과 반대로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남들에게는 잘해주지만, 정작 가족들에게는 소홀한 사람들요.’ 말로는 대다수가 ‘가족을 위해 일하고, 가족을 제일 먼저 생각하며 산다’ 지만 실제로는 그러지 못하고 남들의 눈치를 보는 이들이 있는데요.
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그러시지요.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여라.” 주님께서도 먼저 챙겨야 할 사람이 누군지 명확히 제시하십니다. 같은 것을 먹고, 같은 생각을 나누고, 어려움을 같이 이겨나가는 식구, 가족이 중요하듯, 같은 하느님을 믿고, 같은 믿음 속에서 사랑을 나누고, 그 사랑의 실현을 위해 같이 노력하는 우리부터 챙기면서 똘똘 뭉쳐가야 하는데요. 독서에도 보면, 비록 요셉이, 어릴 때 형제들로부터 내쳐지긴 했어도 그래서 앙금과 상처도 있었겠지만, 결국 요셉이 옛 가족들을 챙긴 것은, 몇 번의 실수와 잘못이 ‘가족애’ 라는 사랑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며, 오히려 회복해 갈 때, 참된 것을 만날 수 있음을 알려주시지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제가 맡은 신자들을 책임지고, 앞길을 보호해주고, 뒤를 봐주며, 그들이 잘 커가길 바랍니다. 복을 빌어주는 부모의 마음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교회는 평신도가 일을 하다가 잘못하여도 그 신자에게 책임을 씌우질 않습니다. 요즘처럼 ‘꼬리 자르기’ 같은 것이 없습니다. 온전히 사목자가 떠안고 가는 것이 사목자의 책임지는 모습이었고, 예전부터 교회가 해오던 방식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그동안 받아왔던 교회의 가르침을 잘 이행해 가십시오. 뒤에는 성령과 함께하는 교회가 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