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2017. 7. 5. 오후 7:3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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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역대하 24,18-22; 로마 5,1-5;마태 10,17-22

   10여 년의 신부로서 사는 시간의 흐름동안 여러분을 지켜봅니다. 저도 여러분처럼 평신도로서 시작을 하였구요. 이젠 또 다른 선택의 길을 통해 예전과는 똑같지 않지만 여전히 주님의 자녀로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발견합니다. 여러분께서 신앙생활을 어려워한다는 것을요.

  얼마 전, 본당에서 열심하다는 분과 소속단원들에게 설문조사를 하였습니다. 현재의 고민은 무엇입니까? 이런 고민해결을 위해 교회에서 나온 문헌들을 찾아보셨습니까? 이런 문제에 관해 교회가 어떻게 접근하길 바라십니까? 였습니다. 결과는 - 많은 분들이 경제적인 문제를 압도적으로 꼽았고요. 그 다음이 가정, 교육, 신앙 순이었습니다. - 많은 분들이 교회문헌을 찾지 않았다는데요. 그것은 그 이유를 모르겠거나, 그래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답니다. - 교회 가르침이 현실성과는 거리가 있다면서 일부는 과학적인 접근을 필요로 하거나 여러 단체가 생겨야 한다는 답변을 보였습니다. 이 사안에 두가지가 보였습니다. 하나는 기복적인 신앙입니다. 내가 시간을 들이고, 정성을 들였으니 현실에서 확인될 수 있는 은총이라는 선물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뜻과 우리의 뜻과는 다를 수 있지요. 둘째로는 종교는 세상과 분리되어야 한다고만 여기기에, 본인이 이미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비신자처럼 교회를 바라봅니다. 교회는 현실참여를 해서는 안된다면서요. 사실 이 답변에는 커다란 모순이 존재합니다. 내가 시간과 정성을 들였기에 은총의 효과가 실제적으로 드러나길 바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교회의 가르침이 세상에 구현되길 꺼리고 있습니다. 그럼 저는 이렇게 질문하겠지요. 하느님이 왜 사람으로 태어나 세상에 오셨을까요? 현실에서 구원사업을 왜 펴셨을까요?

  우리의 이 신앙은 선조들의 유산을 이어받은 신앙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깨달은 종교가 아닌, 주님께서 알려주시고 먼저 살다 가신 분들의 피와 수고로 이어져온 신앙입니다. 우린 기억합니다. 천주교를 반대하던 이 나라가, 이제는 나라의 중심인 광화문 앞에서 천주교의 수장이라는 교황님을 통해 시복식이 열리던 그 때를 말입니다. 그렇게 어렵게 얻은 신앙을 왜 지금에서는 이토록 가벼이 여기게 되었을까요? 나의 바쁨과 나의 스케줄로 인해 주일(主日)이 헌신짝처럼 내던져지게 되었을까요? 여기서 저는 두 가지 질문이 떠오릅니다. 첫째로 무엇이 우리를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는가?’ 두 번째로 나는 어떻게 견뎌내어야 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오늘 독서에는 요아스 임금과 유다의 대신들이 하느님을 버리고 다른 우상을 섬깁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이요, 하느님을 섬기던 이들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여기서 그들의 관심이 현재 어디에 집중되고 있는가? 를 보게 됩니다. 사람에게는 욕망이 있습니다. 적당한 욕심이나 욕망은 목표치를 이루는데 도움이 되지만, 일단 그 선을 넘게 되면 첫 마음을 잃어버리고 사람은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순간은 너무나 찰나의 한 순간입니다. 아마 요아스 임금은 권력에 도취된 나머지, 하느님을 오히려 자신의 방해꾼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자신이 뭔가를 하려고 하면 반대하시니까요. 인간의 많은 욕구 중에 제일 많이 거론되는 것이 재물욕, 성욕, 권력욕입니다.

  그럼 김대건 신부님 대축일을 맞이하여, 신부님들에게 다가오는 유혹이 뭔지 알려드릴까요? 일단 경제력은 보호대상자 수준이고요. 결혼은 못하도록 제도화 시켰으니 일단 법적으로만 보자면 재물욕과 성욕은 불가합니다. 그렇다면 하나 남은 것이 명예욕인데요. 사실 신부님들은 지금처럼 남들 앞에서 서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교우들을 이끌어야 합니다. 꽤나 있어 보입니다. 본당을 벗어나면 이런 자리가 있지요. 교회를 대표하는 주교직, 교구의 국장, 학교 교수, 출판사 방송국의 사장, 각 단체의 관장, 원장, 위원장 등입니다. 분명 그 분이 나중에 돌아가시더라도 그 역사의 흔적이 기록에 남겠지요.

  그럼 김대건에게 힘든 점은 무엇이었을까요? 일단 전국구를 맡고있는 유일한 신부님입니다. 유일하기에 누군가와 고민을 나눌 수도 없고요. 박해를 피해 야밤을 틈타 신자들을 만나야 했습니다. 당연히 만성피로, 스트레스 속에서 편안하게 쉬고 싶다는 유혹이 엿보입니다. 게다가 잡혀서 문초를 당하실 때는 온갖 회유작전을 통해 신자들을 잡아가려는 그들의 속삭임을 견디기 힘드셨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솔직히 남들처럼 사는 게 평화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괜히 사서 고생하지 않고, 그들의 기분을 맞춰주면서 인간관계 잘 유지하고, 신앙 때문에 분란을 피하는 것이 더 편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한다면 무엇을 만날 수 있을까요?

 이제 우리는 개인의 평안을 추구하는 영적인 세속성을 탈출해야 하겠습니다. 기능적이고 형식적인 성사생활을 하며 만족을 하는데 그쳐서는 안됩니다. 그 분이 가르쳐주신 십자가라는 승리방법으로 세상을 살아낼 때, 하느님의 방법이 현실과 맞닿아 있음을 알고 예수님의 방법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방법으로 이 세상을 살아내볼 때, 우린 이 신앙의 가치를 그제서야 깨달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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