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7주일. 1열왕 3,5-12; 로마 8,28-30; 마태 13,44-52
여러분 앞에 서 있는 저는, 여러분께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말씀드려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제가 드릴 말씀이 부디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기 희망합니다. 여러분은 하늘나라를 지향하는 삶이시고요. 이미 지금 지상에서부터 하느님 나라를 살기위해. 이 교회라는 곳을 오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이 만드신 지상을 살고 있고, 예수님의 뜻이 이뤄진다는 교회생활을 하고 계시면서도, 여전히 하늘나라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분이 계시거나, 이 미사가 끝나면 바로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행동하는 것이 오히려 현명하다고 여기는 분이 계신다면... 저는 지금부터 이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다는 사명감이 타오르는데요.
우선 교우분들이 갖고 있는 오해에 대해 말씀을 드려볼까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데로 교회는, 교우분들이 천상국가와 지상 국가의 시민으로서 복음 정신에 따라, 현세에서 자기의 의무를 충실히 살아낼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분들은 본인이 갖고 있는 신앙과 사회 안에서 해야 할 역할을, 구별하지 못하기에 한쪽으로만 편향된 분을 만납니다. 첫째로는 기도만 하면 된다고 여기면서, 본인이 해야 할 바를 벗어나 있는 경우입니다. 본인 스스로 고립을 선택하는 경우라 하겠습니다. 이 세상은 비신자들이 더 많습니다. 가족이라도 신자가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당연히 대화가 쉽지 않습니다. 쉽지 않다고 여겨,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거나, 또는 대화를 포기하거나 심지어 관계를 끊는 경우도 생깁니다. 이런 경우는 본인이 사회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스스로 차단하는 경우인데요. 본인이 해왔던 기도와 본인이 해야 할 역할의 통로가 이어지지 않는 경우라 하겠습니다. 당연히 이것은 하느님이 바라시는 바가 아니지요. 둘째로는, 앞서와 반대로 종교생활은, 혼자 하는 예배 행위나 어떤 도덕적인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라고 여기면서, 현실과 종교는 전혀 다르기에, 현실에서만 답을 찾으려는 경우입니다. 물론 이런 분들도 종교적인 의무를 하십니다. 미사도 나오고, 성사생활도 하고, 봉사활동도 하십니다. 하지만 문제는, 본인이 하고 있는 신앙생활이, 현실 안에서 적용된다는 느낌이 들지 않기에, 사회 안에서 본인을 외톨이로 여기면서, 기쁨이 없는 신앙생활을 반복하거나, 끝내 교회를 저버리는 경우까지 발생합니다. 말씀드린 이 둘의 공통점은, 신앙과 사회생활의 괴리에서 빚어지는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하느님의 구원사업을 현실에서 적용시키는 터득 능력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이 그러합니다. 2독서는 “그 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선(善)을 이루기” 를 희망합니다. 즉 “우린 하느님의 모상이기에 부르심을 따르는 이들이 의롭게 되고 영광스럽기” 를 바라는데요. 그러면 현실에서는 어떻게 선을 이루고 부르심에 대해 응답해야 할까요? 1독서의 솔로몬 왕을 보십시오. 그가 꿈에서 하느님을 만납니다. 하느님이 물으시지요.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여기서 솔로몬의 답변을 주의 깊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솔로몬은 본인이 원하는 것을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즉, 개인적인 소원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나라를 다스려야 할 임금으로서, 백성을 잘 다스리도록 통치를 잘 할 수 있는, 분별력을 원하고 있습니다. 즉, 사적인 차원이 아닌, 공적인 차원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대답했기에 하느님은 감동하시면서, 솔로몬에게 그가 대답한 것 이상의 것을 부어주시는데요. 복음도 그렇습니다. 하늘나라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밭의 숨겨진 보물과 좋은 진주를 발견하는 내용을 거론하십니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하시겠지만, 실은 이런 말이지요. ‘더욱 더 참된 것을 바라는 마음상태를 지니면서, 그 마음으로 좋은 것을 보고 파악하는 식견,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과감한 투자’ 가 이뤄집니다. 이 사람은 본인이 개인적으로 원하는 것을 얻고 파는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남들을 위해 기여할 방도를 찾으려고 이러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과연 복음에만 해당되는 내용일까요? 사회활동을 잘하려면 이런 자세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개포동 본당 교우 여러분.
우리는 현실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 내가 할 바를 찾기 위해 사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 나라를 지금부터 살아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기도를 해야 한다면 ‘내가 먼저 무엇을 청해야 할까?’ 를 염두하시고요.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면 ‘주님 보시기에 어떤 것이 더 합당할까?’ 를 염두하십시오. 이것은 가족공동체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인이 해야할 것을 하기보다 하고 싶은 것을 더 주장하다가 가족끼리도 사이가 멀어지는데요. 그렇게 분별해가고 정돈해 나간다면, 주님의 가르침과 우리가 해야 할 바가 이어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공적인 면을 우선시하기에 결국 사적인 것도 채워지는 것을 경험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주님의 뜻이 곧 내 뜻과 같아짐을 이해하는 경지에 다다를 수 있는데요. 이렇게 되면 나의 삶은 기쁠 수 밖에 없겠지요. 그러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