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7주간 목요일
인간이 사는 세상은 ‘더 나아질 수 있는 곳’ 이 될 지언정, 완전한 선함이 이뤄지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일단 우리 안에 있는 악습도 한 몫을 하고 있고요. 다들 그 선함에 동참하려는 동일한 자세가 되어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부터 나왔던 복음인 ‘밀과 가라지’ 의 비유처럼 이 세상은 그것들이 함께 자라야만 하는 곳이기 때문인데요.
여기서 우린 그럼에도 ‘완덕’ 에 이르고자 애를 씁니다. 완덕에는 3가지가 있지요. 1. 청빈 - 우리가 지닌 소유물을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봉사를 위해 봉헌하는 것. 2. 정결 - 우리와 생각과 몸을 공적인 자세에서 바치는 것. 3. 순명 - 우리의 마음을 바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거론된 순명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필수적이고, 또 하나는 자발적입니다. 필수적인 순명은 교황님, 주교님, 주임신부님 그리고 그의 대리자 신부님과 장상, 그리고 부모님에게 순명하는 것으로 이는 이미 성경 속의 인물들이 그래왔듯이 교회의 일원들은 장상에게 복종할 의무가 있습니다. 심지어 괴롭고 어려운 일까지도 말이지요. 순명으로 얻는 혜택이 있다면 일단 그 지시가 자신의 눈으로 보기에 불합리한 것처럼 여겨져도 따르는 이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마치 무릎이 꺾이는 듯한 느낌이 들어 쉽지는 않겠지만 그러면서 참다운 덕으로 옮겨갈 수 있는데요.
오늘 독서에 나온 모세를 보십시오. 그리 긴 구절이 아닌데도 3번이나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모세는 주님께서 명령하신대로 다하였다. 이는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대로였다.” 모세라고 왜 그래야 하는 지?, 질문, 의심이나, 별별 생각이 왜 들지 않았겠습니까? 하지만 그는 뜻도 잘 모르면서 일단 합니다. 그러면서 덕에 이르게 되지요. 두 번째의 순명은 자발적인 순명입니다. ‘다른 사람의 지시가 아니라, 자신의 자유의지를 갖고 순명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세례를 받겠다. 서품, 종신서원, 레지오 선서’ 에 이르기까지 다 본인의 자발적인 순명입니다. 그러면서 여기에 요구된 것들을 따라야 하는데요. 그러기에 우리가 하려는 순명은 복음의 말씀처럼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 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는 말씀처럼 순명도 교회가 알려준 옛 것의 본(本)마음을 잃지 않아야 하고, 계속 새로움으로 거듭되어야만 우리의 신심도 자라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만 한다고 되질 않습니다. 내게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명령’ 에 어떻게 반응하는 가를 보십시오. 이것이 순명을 대하는 나의 자세의 현주소 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