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7주간 토요일. 레위 23,1-37; 마태 13,54-58
벌써 17년 정도가 흘렀습니다. 그 당시 교회는, 다가올 2천년의 대희년을 선포하면서 다가올 희망적인 3천년기를 준비하던 시기였습니다. 로마 베드로 대성당의 희년문을 열면서 새로운 천년을 기념하셨는데요. tv 로도 방영되었었지요. 사실 이러한 준비는 문 하나 여는 것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이미 1994년 대희년을 준비하던 때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제삼천년기」 라는 문헌을 통해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참회를 통하여 과거의 과오와 불충한 사례들, 항구치 못한 자세와 구태의연한 행동에서부터 자신을 정화하도록 격려하지 않고는, 새로운 천년기의 문턱을 넘어설 수 없다"(33항) 고 천명하시면서,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는, 주님의 원래 정신으로 회복하자고 하시면서, 교황님은 지난 2천년간 교회가 저질러 온 것들을 반성합니다. 예를 들자면, 십자군 전쟁, 갈릴레이의 지동설을 반대한 점, 종교개혁이 났을 때 이를 잘 처리하지 못해 교회가 갈라진 점, 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을 향한 핍박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점, 등을 반성하셨구요. 한국 교회에서도 현실적인 희년실천 방안을 발표합니다. 각종 빚에 시달리는 이들, 집주인은 세든 이들을 위해 전세금, 월세금을 올리지 말고, 부채가 있다면 탕감해주자는 선언을 한 바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정신과 실천의 근거가 된 말씀이 바로 오늘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이 오십년 째 해를 거룩한 해로 선언하고, 너희 땅에 사는 모든 주민에게 해방을 선포하여라.”
희년이란 이집트에서 탈출하던 때를 상기하면서 가나안 땅에서 나누어 받은 재산이, 다른 사람의 손에 영원히 넘어가서는 안 되고, 각자의 것을 보존해주려는 취지였습니다. 노예가 있다면 풀어주고, 빚이 있다면 없애주자는 발언은, 예전에 나온 말이라고는 놀라울 정도로 혁신적인데요.
오늘 요한은 헤로데에게 바른 말을 하다가 죽습니다. ‘동생의 아내를 가지는 사태를 고발’ 하는데요. 헤로데도 문제이긴 하지만, 헤로디아 역시 권력을 맛보고 싶었기에 요한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데요. 우리가 만나려는 행복이란 결국그런 것이지요. ‘영원히 자기 것이 아닌 것을 알면서, 원래 주인에게 돌려줄 줄 아는 자세, 회복시킬 때에야 비로소 참된 질서가 잡힌다 것’ 을요. 이 사실을 안다면 우린 매일을 희년처럼 살 수도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