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8주간 수요일. 민수 13,1-14,35; 마태 15,21-28
조선 중기 무렵, 임진왜란 때 승병장으로 활약을 한 경헌 스님이란 분의 시를 하나 소개합니다.
유교를 꿰뚫어도 쓸 곳이 안쓰럽고
불경을 능히 외나 마음 외려 미혹하다
조사(祖師)의 활구(活句)로 의심덩이를 깨야지만
이를 두고 대장부라 불리리라
풀이하자면, 유교 경전을 익혀도 쓸데없고, 불경을 입으로 달달 외워도 마음이 여전히 헝클어진 그대로라면, 일단 가르침으로 얻은 것을 토대로 의심부터 시원하게 없애야 한다. 마음으로만 공부하지 말고, 몸으로 공부해야만 된다는 이야기인데요.
오늘 독서 말씀이 그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드디어 약속된 땅으로 왔습니다. 보아하니 살기는 좋아 보이지만, 그 땅은 긴 시간동안을 다른 민족들이 이미 살고 있습니다. 헌데 그 민족들이 당장 보기에 자기네보다 힘이 세보이니까, 겁을 집어먹고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데요. 사실 우리가 그러하지요. 직접 체험해보면서 부딪히기보다는 일단 소문에 의거하여 머리로 따집니다. 예를 들자면, 저하고 한 번도 말 한번 섞지 않은 이들이 제가 ‘어떤 사람인지 다 안다’ 는 투로 말하는 것을 가끔 봅니다. 사실 공부도 신앙도 그렇습니다. 각자의 선입견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 지는 부딪혀 봐야 아는데요. 일단 맛을 봐야지요. 오늘 복음에 나온 가나안 부인은 주님께 매달립니다. 그녀가 단순히 소문만 듣고 이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나름 들어온 것을 토대로 따라다니면서 확신이 섰기에 그러는데요. 게다가 본인이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것도 알기에, 구원의 우선순위 대상에서 멀어져 있는 것도 알고 있어서 ‘강아지’ 를 운운하면서 매달립니다.
여기서 좋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성경을 안 읽어본 이들이 어디 있습니까? 기도를 조금이라도 안 해본 이들이 어디 있습니까? 하지만 그 차이는 천차만별인데요. 우리가 하는 판단의 근거는 어디서부터 시작됩니까? 체험입니까? 그저 막연한 내 생각인가요? 이 차이부터 좁혀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