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2고린 9,6-10; 요한 12,24-26
이런 이야기가 듣기에 거북하게 여겨질 수 있지만 실제 우리 모습이 그러합니다. ‘손해보고 싶지 않다’ 는 마음이 있지요. 손해를 보고 싶지 않는 이들이, 교회에도 모여들었기에 실제 이런 모습들이 나옵니다. ‘미사시간에 늦게 도착해도 나는 성체를 모셔야 한다. 그래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니까... 봉사를 하더라도 할 수 있는 봉사만, 하고 싶은 봉사만 하면서 지낸다...그래서 갑작스레 어려운 일이 닥쳐도 되도록 피한다...교회에서 가르치는 것들이 비록 원칙에는 맞는 것일지라도, 나는 내가 원하는 것만 한다...’ 너무 비관적으로 바라본 것일까요? 사실 성직자 수도자가 본당에서 지내다보면, 참 힘든 것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건 사람들의 이기주의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4번째 본당에 갔을 때, 어쩔 수 없이 저는 화장실 청소를 해야 했습니다. 그 곳 본당 화장실은 야외 건물로 되어 있었기에, 신자가 아닌 분들도 지나가다가 볼일을 보는 곳입니다. 그 당시 본당 관리인이 바뀌고 젊은 분이 직원으로 오게 되었습니다만, 그 분은 무슨 이유로 화장실 청소를 하지 않았습니다. 신자들도, 사무장도 그 어떤 분도 하지 않습니다. 그랬기에 ‘지저분하다’ 는 민원이 며칠 째 나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사태를 바라보며 마음을 다졌습니다. 개인적으로 원하지는 않았으니까요. 모든 미사가 끝난 주일밤 10시, 성당문을 닫아걸고서, 혼자서 2시간 반을 락스를 풀며, 타일을 빡빡 문질러대며 남녀 화장실 청소를 다 했습니다. 같이 하자고 하는 것도 폐 끼치는 것 같아서요. 다음 날 월요일, 아침에 외출을 하려는데 사무장님이 저의 팔을 붙잡습니다. “어떻게 된 일이냐?” 고요. 관리인이 출근하고 보니, 청소가 다 되어 있다고 사무장에게 말한 모양입니다. 저는 시큰둥하게 말했습니다. ‘월급을 받고 청소를 해야 할 분도 안한다. 이 곳의 본당 신자들도 안한다. 그럼 신부가 해야지 누가 합니까?’ 그랬더니 결론은 일주일마다 청소대행업체를 부르는 것으로 끝을 맺더군요. 제가 원한 결론은 그런 게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오늘 말씀인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는” 영성을 배우려면, 오늘 라우렌시오 부제처럼 자신이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평소에 손에 흙을 묻히길 두려워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저는 그 때 청소를 하며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손해입니다. 내 시간도 빼앗기고요. 내 계획도 틀어집니다. 하지만 할 바를 할 때, 나는 비로소 삽니다. 물론 마음 속으로는 원하지 않으면서 할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비록 가식이라 불릴 지라도 우리는 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우린 평소에 죽어보는, 손해보는 연습을 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앞으로 하게 될 사랑의 모습이 그나마 자연스럽게 나올테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