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2017. 8. 9. 오후 5: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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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2고린 9,6-10; 요한 12,24-26

  이런 이야기가 듣기에 거북하게 여겨질 수 있지만 실제 우리 모습이 그러합니다. ‘손해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있지요. 손해를 보고 싶지 않는 이들이, 교회에도 모여들었기에 실제 이런 모습들이 나옵니다. 미사시간에 늦게 도착해도 나는 성체를 모셔야 한다. 그래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니까... 봉사를 하더라도 할 수 있는 봉사만, 하고 싶은 봉사만 하면서 지낸다...그래서 갑작스레 어려운 일이 닥쳐도 되도록 피한다...교회에서 가르치는 것들이 비록 원칙에는 맞는 것일지라도, 나는 내가 원하는 것만 한다...’ 너무 비관적으로 바라본 것일까요? 사실 성직자 수도자가 본당에서 지내다보면, 참 힘든 것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건 사람들의 이기주의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4번째 본당에 갔을 때, 어쩔 수 없이 저는 화장실 청소를 해야 했습니다. 그 곳 본당 화장실은 야외 건물로 되어 있었기에, 신자가 아닌 분들도 지나가다가 볼일을 보는 곳입니다. 그 당시 본당 관리인이 바뀌고 젊은 분이 직원으로 오게 되었습니다만, 그 분은 무슨 이유로 화장실 청소를 하지 않았습니다. 신자들도, 사무장도 그 어떤 분도 하지 않습니다. 그랬기에 지저분하다는 민원이 며칠 째 나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사태를 바라보며 마음을 다졌습니다. 개인적으로 원하지는 않았으니까요. 모든 미사가 끝난 주일밤 10, 성당문을 닫아걸고서, 혼자서 2시간 반을 락스를 풀며, 타일을 빡빡 문질러대며 남녀 화장실 청소를 다 했습니다. 같이 하자고 하는 것도 폐 끼치는 것 같아서요. 다음 날 월요일, 아침에 외출을 하려는데 사무장님이 저의 팔을 붙잡습니다. 어떻게 된 일이냐?” 고요. 관리인이 출근하고 보니, 청소가 다 되어 있다고 사무장에게 말한 모양입니다. 저는 시큰둥하게 말했습니다. ‘월급을 받고 청소를 해야 할 분도 안한다. 이 곳의 본당 신자들도 안한다. 그럼 신부가 해야지 누가 합니까?’ 그랬더니 결론은 일주일마다 청소대행업체를 부르는 것으로 끝을 맺더군요. 제가 원한 결론은 그런 게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오늘 말씀인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는 영성을 배우려면, 오늘 라우렌시오 부제처럼 자신이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평소에 손에 흙을 묻히길 두려워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저는 그 때 청소를 하며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손해입니다. 내 시간도 빼앗기고요. 내 계획도 틀어집니다. 하지만 할 바를 할 때, 나는 비로소 삽니다. 물론 마음 속으로는 원하지 않으면서 할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비록 가식이라 불릴 지라도 우리는 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우린 평소에 죽어보는, 손해보는 연습을 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앞으로 하게 될 사랑의 모습이 그나마 자연스럽게 나올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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